|
|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4000안타 이상을 친 선수는 딱 두 명이다. 하나는 20세기 초반 '타격의 신'으로 불렸던 타이 콥(4191개)이고, 다른 하나는 1960~1970년대 포수와의 충돌도 피하지 않고 달려드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찰리 허슬(Charlie Hustle)'이라는 별명을 얻은 피트 로즈(4256개)다.
|
로즈가 세상을 떠난 1일 MLB.com은 '통산 안타왕 피트 로즈가 83세로 눈을 감다(All-time hits leader Pete Rose dies at 83)'라는 건조한 제목의 기사에서 1985년 9월 12일 샌디에이고전 1회 안타를 치는 영상을 올리며 '로즈가 좌중간에 안타를 날리자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가 쏟아졌고, 팀 동료들과 15살 아들 로즈 주니어가 그를 맞아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로즈는 콥의 기록을 깬 뒤에도 64개의 안타를 더 쳤다. 흥미로운 건 당시 로즈의 신분이다. 그는 감독 겸 선수(Player-manager)였다. 로즈는 1960년대 스타덤에 오르고 1970년대 쟈니 벤치, 토니 페레즈, 조 모건, 조지 포스터 등과 함께 '빅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두 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등 신시내티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안타 기록은 다른 팀에서 세웠다.
FA 제도가 도입된 1975년 이후 로즈도 그 혜택을 봤다. 1978년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은 로즈는 4년 320만달러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하며 신시내티를 떠났다. 그리고 1980년 당대 최고의 3루수 마이크 슈미트와 함께 필라델피아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1년에는 통산 3631안타를 치며 당시 내셔널리그 통산 최다안타 1위 스탠 뮤지얼(3630안타)을 넘어섰다.
또한 1984년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해 통산 4000안타 고지에 오르며 콥의 기록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가 다시 신시내티로 돌아온 것은 그해 8월 17일이다. 당시 신시내티 구단은 트레이드를 통해 로즈를 영입하며 감독 겸 선수로 앉혔다. 감독을 하면서 고향 팀에서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우라는 배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훗날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86년 시즌을 마치고 유니폼을 완전히 벗은 로즈는 감독에 전념했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신시내티는 4차례 지구 2위를 차지했다. 디비전시리즈가 없던 시절이라 로즈는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팀을 지휘하지는 못했지만, 감독으로서는 꽤 유능했던 것으로 사람들은 기억한다.
|
|
이후에도 로즈는 솔직하지 못했다. 영구 제명 처분을 받고도 2004년 1월 출간한 자서전 '창살 없는 감옥(My Prison Without Bars)'에서 도박을 했음을 인정할 때까지 15년 동안 '무죄'를 주장하며 MLB에 복권을 강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징계를 주도한 바트 지아마티부터 페이 빈센트, 버드 셀릭, 롭 맨프레드까지 MLB 커미셔너들은 로즈의 복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은퇴 이후에도 로즈의 인생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탈세 혐의로 징역 5월형을 받았고, 선수 시절 16세 미만 소녀와 관계를 맺은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시절 승부근성과 안타 기록 덕분에 그는 1999년 올-센트리팀(All-Century Team)에 선정됐고, 2016년에는 신시내티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그의 배번 14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2000년 전후로 세워진 여러 홈런 기록들이 '약물 스캔들'로 얼룩진 것과 달리 로즈의 4256안타 그 자체는 비교적 순수했다는 점에서 그는 일정 부분 '레전드'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