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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그리고 책임감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24-01-31 17:40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30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KIA 선수단이 캠프가 열리는 호주 캔버라로 출국했다. 출국 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현종. 인천공항=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4.01.30/

[인천공항=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나만 잘 하면 된다."

'위기'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일 정도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도 '대투수' 양현종(36·KIA 타이거즈)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양현종은 KIA 투수조 최고참으로 호주 스프링캠프에 나선다. '고참'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은 나이고, 그 역할을 수행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올해는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감독 없는 스프링캠프'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누군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코치들이 아무리 독려해도 결국 야구를 하는 건 선수들. 그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베테랑의 카리스마와 경험, 리더십이다.

사실 양현종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당황스럽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첫 마디는 평소의 양현종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30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KIA 선수단이 캠프가 열리는 호주 캔버라로 출국했다.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양현종. 인천공항=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4.01.30/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30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KIA 선수단이 캠프가 열리는 호주 캔버라로 출국했다. 출국 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현종. 인천공항=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4.01.30/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지만 캠프로 가는 길이니 눈치 보거나 고개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양현종은 "그동안 스스로 생각했던 각오와 올해 목표를 한 번 더 마음 속에 새기면서 비행기에 타자고 했다. 선수들 모두 무슨 말인지 와닿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투수 코치 두 분이 모두 바뀌셨다. 코치님과 어린 선수 사이에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베테랑의 역할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양현종은 여전히 KIA 마운드의 상징과 같은 이름이다. KBO리그 통산 최연소 160승, 최다 선발 등판 및 최다 선발승, 개인 통산 다승 단독 2위, 10시즌 연속 100이닝 달성 및 역대 2번째 1900탈삼진, 역대 3번째 9시즌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 역대 3번째 2300이닝, 9시즌 연속 170이닝 등 일일이 세기도 버거울 정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올해도 그는 탈삼진 101개를 추가하면 송진우가 갖고 있는 KBO리그 개인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2048개)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통산 최다 선발 등판(383경기) 및 최다 선발승(166승) 기록은 그가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이길 때마다 새롭게 쓰여진다.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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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IA에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투수는 이의리(22·11승) 단 한 명 뿐이었다. 외국인 투수는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두 명 모두 교체됐고, 양현종이 9승에서 멈춰섰다. 신인이었던 윤영철(20)이 8승을 올린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지만, '팀 승리 보증수표'로 여겨지는 10승 투수 부족은 KIA가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였다.

여전히 양현종은 두 자릿수 승수를 채울 수 있는 투수로 여겨진다.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구위-구속이 저하됐다는 평도 있지만, 제구와 노련한 수싸움으로 부담을 극복했다. 9시즌 연속 170이닝을 돌파하는 등 이닝 소화력도 충분한 투수다. 다만 지난해 리그 평균(3.23점)에 못 미치는 2.79점의 득점 지원, 후반기에 드러났던 기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10승 복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현종은 "아프지 않는 게 우선이다. 어느덧 연차가 쌓이다 보니 체력적인 준비도 필요할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선수들이 겨울에 새로운 시스템을 많이 배워왔다. 정말 잘 하려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며 "나 역시 배울 건 배우면서 체력, 정신적으로 잘 준비해야 한 시즌을 잘 치를거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가져야 할 부담은 내가 짊어졌으면 한다. 다승이나 150~160㎞의 공을 던지는 것도 좋지만 이닝만 길게 가져간다면 팀에 도움이 되고 어린 투수들에게 부담을 줄 필요도 없다"며 "오래, 길게 던졌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위기 속에도 끓어 오르는 대투수의 승부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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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에 휩싸이기 전까지만 해도 '우승후보'로 평가 받았던 KIA다. 양현종은 "작년에 가을야구 문 앞까지 갔다가 안 좋았다. 하지만 9연승 기간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캠프 기간 선수들이 모두 합류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분명 작년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거라 확신한다. 부상만 조심한다면 더 추운 날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기 속에서도 대투수의 승부욕은 식지 않는 눈치다.


인천공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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