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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 졸업을 앞둔 이정후를 넥센 히어로즈가 2017년 신인 1차 지명했을 때, 또 지난해 이정후가 각종 고졸 신인 기록을 경신하며 신인왕을 차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슈퍼 루키' 이정후 얘기기 나오면 반드시 '이종범 아들'이라는 수식어 내지 설명이 따라붙었다. '아버지 이종범'의 큰 그림자를 걱정하는 야구인들이 많았는데, 이정후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데뷔 시즌에 144경기 전 게임에 출전해 맹활약했다. 첫 해 빛나는 성과를 두고 찬사가 쏟아졌으나, 한편으로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특급 루키들이 2년차 징크스에 고전했던가. 또 첫 해 기록은 어디까지나 고졸 신인으로서 놀라운 성적이었을 뿐이다.
장정석 히어로즈 감독은 "부상으로 엔트리에 빠졌다가 복귀하면 타격 밸런스를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이정후는 이런 게 없다. 정말 재능을 타고 난 것 같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이정후의 타격감은 춤을 췄다. 7월 타율이 4할1푼9리(43타수 18안타)였는데, 8월에는 5할3푼4리(58타수 31안타)를 찍었다. 요즘 이정후를 보면 안타를 생산하는 기계같다. 최근 10경기 중 9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3안타 이상을 친 게 5경기다. 지난 11일 LG 트윈스전에선 5안타를 때렸다.
기록만 번지르르 한 게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 15일까지 득점권 찬스에서 3할8푼9리. 좌타자인데 좌투수 상대 타율이 3할9푼8리다. 올 시즌 부상으로 출전 경기수가 적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성적(552타수 179안타, 타율 3할2푼4리, 2홈런, 47타점, 111득점, 12도루)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이 위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나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프로 2년차 정후가 낫다. 요즘 컨택트를 보면 깜짝 놀란다. 시즌 초반 부상이 없었다면 200안타까지 가능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1994년, 프로 2년차에 타율 3할9푼3리,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한 걸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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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프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이렇게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 수준이 높아져 고졸 루키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KBO리그를 보면, 고졸 1~2년차 주전 선수는 거의 없다. 대다수 신인 선수가 입단 후 1~2년 2군 리그에서 뛰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해 주전 경쟁을 시작한다. 이정후처럼 첫해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나서, 2년차에 최고를 바라보는 케이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위원은 "정후가 프로에 입단해 자리를 잡고 자기 야구를 하는데 4년 정도 필요하다고 봤다. 정후에게 4년간 실패도 맛보고, 경험을 쌓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자신이 대학 4년간 실력을 쌓은 것처럼, 아들 또한 프로 첫 4년은 준비의 시간으로 봤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예상을 보기좋게 깼다.
이 위원은 "기술적인 조언은 안 한다. 그런 부분은 소속팀 코칭스태프가 해야할 일이다. 프로 첫해에도 얘기했지만, 선수로서 인성, 마음 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 했을 때 칭찬은 하는데, 그 이상의 얘기는 안 한다"고 했다.
프로 2년차가 되면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에 따라 고전하게 되는데, 이정후는 이를 이겨내고 능력치를 몇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 위원은 "지난 시즌에는 힘이 부족해 배트에 공을 갖다 맞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는 타구에 힘을 실어 날린다. 변화구, 몸쪽 코스 공에 밸런스가 깨지지 않고 잘 대처한다"고 칭찬했다. 2년차에 상대 투수에게 빈틈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장단점을 파악해 공략한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아버지 이름값 때문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확실히 멘탈이 강한 것 같다. 경기에서 부진한 날에도 집에 오면 '아빠, 내일 잘 하면 되지 뭐'라고 한다"며 웃었다.
아버지는 현재 보다 미래를 얘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이고, 안 좋았을 때 이겨내는 능력이다. 정후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처럼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못했는데, 정후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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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이정후 부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코치, 선수로 함께 출전한다. 18일 대표팀 소집 훈련이 시작된다. 이정후는 지난 13일 대표팀 일부 엔트리 조정 때 합류가 결정됐다. 리그 수위 타자의 대표 발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야구인은 없다. 지난해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 이어 두 번째 대표팀 부자 동행이다.
이 위원에게 '대표팀 1차 최종 엔트리 발표 때 정후가 탈락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애 엄마가 울어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