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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박용택(LG 트윈스)은 기쁨을 드러냈다.
박용택은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팀이 5-7로 뒤지던 4회말 1사 1, 2루에서 우익수 오른쪽 방향으로 흐르는 2타점 2루타를 쳤다. 롯데 구원 투수 고효준을 상대한 박용택은 1B2S에서 들어온 4구째 123㎞ 커브에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우익수 오른쪽을 넘어 펜스까지 흐르는 2루타로 연결됐다. 이 안타로 박용택은 개인 통산 2319안타를 달성해 지난 2002년 4월 16일 문학 SK전에서 프로 첫 안타를 신고한 이래 16년 2개월 7일, 5913일 만에 양준혁(은퇴)이 갖고 있던 개인 최다 안타(2318안타)를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박용택은 팀이 12-8로 앞서던 7회말 다섯 번째 타석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에 이어 15-8이던 8회말 2사 1루에서 중전 안타로 2안타를 추가, 최다 안타 기록은 2321안타로 늘어났다. 이날 LG는 롯데에 18대8로 대승했다.
기록은 시즌 끝 전에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실 가장 큰 걱정은 기록을 세우는 날 이겼으면 하는 것이었다. 초반 어려운 흐름이었는데 후배들이 열심히 해줘 평생 기억에 남는 기억을 만들어줬다.
-신기록이 동점 적시타였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신경이 좀 쓰였을텐데 추격하는 과정이었기에 부담을 잊고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웃음).
일부러 우는 것은 아니다. 울컥해야 우는 것 아닌가(웃음).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본다.
-2002년부터 오늘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는.
2002년 4월 16일 인천 SK전 첫 안타(2루타)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 2루타 원없이 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2루타를 3개 친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양준혁 위원과 나눈 대화는.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영광스런 자리에 선배님이 찾아주셨다. 선배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위원이 3000안타 가능하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처음 말할때 다들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런 분이 계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그런 목표가 있어야 한다. 야구를 10년 넘게 하면 야구에 대한 권태감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런 큰 목표를 갖고 뛰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신기록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단 동점이 됐다는 것,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침 투수 교체 타이밍이 됐다. 그때 한분 한분 생각나시는 분들이 계셨다. 사실 부모님, 아내, 가족이 야구장에 잘 안온다.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오늘은 가족들이 다 왔다. 장모님까지 오셨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기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적으로는 서른 정도 됐을 때 이 기록을 깰 것이라고 단 한 명도 생각한 이가 없었을텐데, 김용달 코치를 만났다. 요즘에도 가끔 뵙고 타격에 대해 여쭙기도 한다. 내게 야구계에 단 한 명의 스승을 꼽는다면 김용달 코치다.
-이제 70년대생 타자가 박한이(삼성)과 단 둘 뿐이다. 동료들이 코치로 나가있다.
그래서 (박)한이형과 함께 계속 아프지 않고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함께 하는 고참 선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들 아프지 않고 오래 야구를 했으면 하는 서로에 대한 응원이 생기는 것 같다.
-잠실에서 기록을 세우고픈 욕심은 없었나.
순리대로 잠실에서 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부러 (안타를) 안 친 것은 아니었다(웃음). 볼넷으로라도 출루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앞선 무안타에 부담이 되진 않았나.
이병규 코치에게 '잠실 6연전 중 2개는 치지 않겠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주말 경기, 만원관중, 이기는 경기 중 친다면 멋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신기록 뒤 2안타를 더 쳤는데.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더 편해진 감이 있었다. 앞으로도 더 좋은 타격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기 구단의 중심 타자로 마음고생도 심했을텐데.
비시즌에 농담 삼아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야구계서 나만큼 질타를 많이 받은 선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혼도 났다. 야구를 하면서 해보고 싶은건 다 한 것 같다. 단 하나(우승)만 남았다. 17년차지만 올 시즌만큼 느낌이 괜찮은 시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모든 선수들이 제 역할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대주자, 대수비, 대타 등 역할이 잘 정해져 있다. 그런 역할이 정해지지 않으면 야구장 밖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올해까지 아홉 분의 감독님을 모셨는데(웃음) 이렇게 역할 분담을 잘 해주시는 감독님을 만난 기억이 없다.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없다. 진심으로 한마음이 되어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 것 같다.
-기록을 넘어설 만한 후배를 꼽는다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양준혁 선배가 은퇴할 때 내가 이 기록을 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릿 속에 1~2번째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후배들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보다 현역 선배는 박한이 뿐이지만, 깰수도 있을 것이다. (팀내에서 깨줬으면 하는 후배는) 없다(웃음).
-타격의 정의를 내린다면.
타격은 무엇으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답이 없다. 그래서 어렵다. 수비는 시스템에 맞춰 100%에 맞춰야 하는데 타격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40%에 맞추기 어렵다. 타격의 정답이란 없다고 본다. 불과 몇 년전까지 지금의 타격 메커니즘이 말이 안되던 시절이었다. 타자로 롱런하려면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시대, 야구 흐름, 투수, 내 몸상태 등 여러가지 변화게 빠르게 대처해야 롱런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양준혁 위원은 박용택이 변화에 잘 대처하는 선수라고 평하더라.
솔직히 말한다면 떨어지는 신체 능력을 기술과 경험으로 보완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메꾸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고 본다. 딱히 튀어 오르는 것은 없는게 결국 신체 능력의 저하라고 본다. 하지만 타격은 충분히 변화를 통해 만회할 수도 있다고 본다. 스피드, 파워가 떨어져도 나머지는 축적해온 경험이나 기술, 타격에 대한 상식을 총동원하면 (신체능력 저하는)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뛰고 있다.
-은퇴 생각을 해본적은 없나. 양준혁 위원은 45세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던데.
전혀 없다. 그때가 되면 은퇴 생각이 들 것 같다(웃음). 정말 두 가지는 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우승이다. 우승을 한 뒤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승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은퇴할 생각이 없다. 고마운 친구가 하나 있다. 서인석 전력분석원이 있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프로 초반 힘들고 시행착오를 겪을 때 쉬는 날에도 일반 친구들을 데려와 특타 공을 던져주며 응원해줬다. 지금도 전력분석파트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친구가 가끔 농담으로 '내가 12년 동안 형한테 (특타공) 던져줬는데 못하면 알아서 하라'는 말도 한다. 아버지도 잠시 보니 울먹이시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더라.
-2002년 이후 우승을 못했는데.
데뷔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뒤 여태까지 하지 못했다. 기록 달성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그동안 LG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야구를 더 하고 싶은 모양이다(웃음).
잠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