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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테랑의 힘이 필요한가.
이날 한화전,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였다. 초반 상대 선발 김재영 공략을 못한 것부터 뼈아팠다. 천적을 만드는 건 올시즌 뿐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만큼 이겼다는 자체에 충분히 의의를 둘 수 있다.
결정적 장면을 보자. 세 선수가 딱 눈에 들어온다. 8회초 동점타를 친 정성훈, 그리고 9회초 결승타를 친 손주인, 마지막으로 9회말 1점차 살떠리는 상황 마지막 아웃카운트 2개를 잡은 이동현이다.
하지만 정성훈의 이 타석을 보자. 바뀐 투수 정재원을 끝까지 괴롭혔다. 볼카운트 1B2S 상황서 파울, 그리고 그 다음 공 볼을 얻어냈다. 흔들린 정재원이 폭투를 저질러 1사 2루가 3루 찬스로 바뀌었다. 그리고 3개의 공을 더 커트해낸 정성훈. 상대가 전진수비를 한 것을 보고 9구째 정재원의 바깥쪽 공을 중견수쪽으로 툭 밀었다. 2000안타, 2000경기 출전 베테랑 타자의 노련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필승조가 아닌 투수가 그 상황서 더욱 긴장할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큰 스윙을 줄이고 커트 승부를 한 게 주효했다.
손주인의 9회 결승타도 값진 안타였다. 바뀐 투수(심수창)의 초구를 공략하라는 정석을 그대로 따랐다. 떨리는 순간, 머릿속에 그린 작전을 잘 수행해냈다.
최근 LG는 이기는 경기도 불펜이 지키지 못해 넘어가는 경기가 많았는데, 9회 홈런으로 1점차까지 쫓기는 상황 마지막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낸 이동현의 관록도 빛이 났다.
LG의 최근 부진은 젊은 선수들이 힘을 잃으면서 부터다. 4번 양석환은 이미 2군에 갔고, 채은성도 작년 같은 모습이 아니다. 잘해주던 이천웅, 이형종 등도 최근 타격 페이스가 완전히 바닥이다. 물론, 이 선수들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힘이 빠질 때까지 정규시즌을 이끌어와준 세력들이다.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 체력, 심리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이럴 때 베테랑들이 필요하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강팀이냐, 약팀이냐로 갈린다. LG도 이 위기를 탈출하게 해줄 베테랑들이 있었다. 드디어 그들이 존재감을 발휘했다.
서럽기도 했을 것이다. 정성훈은 제임스 로니에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 로니가 도망가자 다시 기회를 얻었다. 손주인도 몇년 전부터 젊은 경쟁자들의 위협을 계속 받아왔다. 이동현도 마무리, 필승조 등 멋진 보직으로 시즌을 출발하지 못했다. 이 선수들이 LG를 살렸다. 그래서 한화전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경기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