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기부여, 정신력은 스포츠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언제부턴가 정신력을 강조하면 케케묵은 낡은 이론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체력과 기술이 동반되지 않으면 마음먹는다고 경기력이 상승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느슨한 마음은 가진 체력과 기술을 좀먹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야구에서 좋은 예도 있다. FA를 앞둔 선수들이 종종 성적을 기대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FA로이드'. 병역혜택이 걸린 국제대회에서 보여주는 선수들의 기민한 움직임. 이때만큼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가 기대된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은 죄가 없고,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악몽같은 결과는 모두 김인식 감독 탓인가.
어느 순간 대표팀 태극마크는 자랑이 아닌 천덕꾸러기가 됐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에게 대표팀 차출은 누군가에게는 영광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내키지 않는 '귀찮은 의무'일 뿐이다. 연봉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몸값 비싼리그에서 뛸수록 그렇다.
조금이라도 시즌을 준비하는데 방해가 되면 합류에 손사래를 친다. 이제 해외파들에게 대표팀은 팀을 옮기거나, 새롭게 계약을 하면 자동적으로 빠지는 곳이 됐다. 병역 혜택이 필요할 때는 부르지 않아도 불러달라 애원하며 매달리지만 WBC는 이도저도 아니다.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KBO리그 현역 감독들은 팀운영이 우선이다. 2015년 프리미어12는 '손수건 돌리기' 끝에 김인식 감독이 맡았다. 국가대표 사령탑은 골칫거리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국민 감독' 소리를 들어도 몇달이면 끝이다. 소속팀과의 재계약은 오로지 리그성적에 달려 있다. 졸전을 치르면 이렇게나 많은 팬들이 허탈해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표팀 전임감독제는 수년째 논의만 거듭하고 있다.
급조된 이스라엘, 연합군인 네덜란드에 발목을 잡힌 대한민국 대표팀. 거품낀 KBO리그 수준은 메이저리그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마이너리그보다도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수많은 '가정'은 오히려 힘을 뺀다. 우리는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아 기형적인 타고투저가 생겼고, 우리는 저들보다 리그 준비가 더뎌 선수들의 몸상태가 아쉬웠고, 우리는 저들보다 부상선수가 많았고, 심지어 우리는 홈어드밴티지가 오히려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이 끝도 없는 핑계들은 모두 부질없다.
늘 돌발상황은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체력, 기술, 정신력은 이정도 변수도 뛰어넘지 못할 만큼 허술했다.
선수들도 힘들겠지만 스스로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되물어야 하는 순간이다. 팬들과 언론의 강한 질타에 어떤 선수(모 스포츠 국가대표)가 SNS에 올렸듯이 '그렇게 답답하면 당신네들이 한번 해보던지'라는 마음이 있다면(그럴리 없겠지만) 여전히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시속 200㎞ 공을 던진다고 해서 수억원, 수십억원 연봉이 생길 리가 있겠는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주니 가능한 일이다. 한국야구의 성장이 리그를 살찌운다. 그 첫번째 열매는 선수들이 맛볼 것이다.
시장논리가 통하지 않는 모기업의 지원으로 돈걱정 없는 KBO리그에선 선수들이 팬사랑을 덜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야구인기가 땅에 떨어져도 모기업이 언제까지나 야구단에 수백억원의 운영자금을 지원할까. 대표팀과 리그는 결국 뒤엉킨 운명 공동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