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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구장 운영권 약속 깬 광주시, KIA 타이거즈는 영원한 '을'인가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2-08 09:17


관중이 가득찬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우리 국민 대다수, 야구팬들은 KIA 타이거즈하면 '빨간 유니폼'과 함께 '광주'를 떠올릴 것이다. 1980~1990년대 광주는 한국 프로야구의 '심장부'라고 할만 했다. '야구 명가' 타이거즈의 터전이었고, '타이거즈 야구'는 호남인들의 자부심이었다. 한 야구인은 이 지역이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됐을 때, '타이거즈 야구'를 보면서 울분을 삭였다고 했다. 암울했던 시절에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여준 게 야구다.

2001년 초 광주 야구가 벼랑에 몰렸다. 해태그룹이 무너지고 야구단이 해체 위기에 처했다. 호남에 기반을 둔 대기업들이 줄줄이 구단 인수 후보로 호명됐는데,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사실 아무리 재벌기업이라고 해도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보는 야구단을 인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해 3월 광주시는 '해태 타이거즈 대책 회의'까지 열어 '인조잔디 조성', '낙후된 무등경기장 개보수', '신축구장 추진' 등 야구단 광주 유지를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발표했다. 4월에는 고재유 광주시장이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박용오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만나 "2003년부터 연차적으로 3만명 규모의 새 야구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신축 야구장을 약속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광주시의 신축 야구장 공약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광주 시민과 타이거즈가 염원하고 고 시장이 약속했던 새 야구장은 10년 넘게 지난 2014년에 무등야구장 옆 종합운동장터에 들어섰다. KIA 타이거즈의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총 사업비 994억원 중 300억원을 부담해 이뤄진 일이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광주시가 온전히 공약을 이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광주시는 300억원을 낸 기아차(KIA 타이거즈)에 25년간 경기장 운영권을 주기로 했다. 지자체와 해당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체, 구단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엉뚱하게 흘러갔다. 지역의 일부 시민단체가 '대기업 특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광주시는 이에 편승해 '2년 후 재검토'를 결정했다. 시민단체 주장을 빌미로 신뢰를 깨트렸다.

광주시는 내년 4월 재평가 작업을 거쳐 계약 경기장 운영권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경기장 운영 현황을 들여다보겠다며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거즈 구단 존속을 위해 야구장 신축을 다짐했던 광주시가, 10여년 만에 다시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기아차나 KIA 구단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지자체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 광주시의 선처만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종범. 스포츠조선 DB

'대기업 특혜' 주장도 속을 들여다보면 우습다. 현재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KBO리그 9개 구단이 매년 150억원이 넘는 돈을 모기업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모기업 도움없이는 구단 운영이 불가능하다. 프로야구 위상과 인기가 높아져 팬이 증가하고 방송사 중계권료, 입장권 수입, 마케팅 수입이 늘었다고 해도, 자립을 할 수 없는 여건이다. 구단들이 모기업 의존도를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자체 수입으로 팀을 유지한다는 건 요원해 보인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KBO리그 구단들은 수십년간 수천억원의 누적 적자를 감수하면서 구단을 끌고 왔다.

시장논리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혜' 주장이 성립하려면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이득을 봐야하는 데, KIA 구단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존립이 어려운 구단에 '특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 매년 300억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타이거즈다. 프로의 기본인 경기장 운영권조차 확보하기 힘든 처지가 서글프다.

십수년 전 타이거즈가 광주, 나아가 호남인들을 하나로 만든 것처럼, KIA 타이거즈 또한 광주 시민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주고 있다. 광주시나 시민단체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야구단이 수행해 왔다. 더 많은 격려와 지원이 필요한데도 오히려 지자체는 시민단체에 휘둘려 압박을 하고 부담을 떠안기는 형국이다.

지금은 기업이 이익의 사회 환원, 혹은 기업 홍보 차원에서 무작정 돈을 퍼붓는 시대가 아니다. 한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홍보나 마케팅이 필요하다면, TV 광고나 국제대회-해외 유명 구단을 후원 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구단 운영 말고도 많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광주시가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는 식으로 타이거즈를 쉽게 보는 것 같다. 성남과 울산 등 많은 야구단 유치에 적극적인 지자체가 적지 않다. 전북은 10구단 연고지를 놓고 수원시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다. kt 위즈 유치에 성공한 수원시가 야구장 정비 등 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걸 광주시는 알고 있을까.

현재 광주 챔피언스필드 1루쪽 원정팀 라커 뒤편은 빈공간으로 남아있다. 임대를 하고 싶어도 나서는 이가 없다고 한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광주시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특혜'를 운운할 게 아니라, 광주시민들을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영원한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를 찾은 관중들이 홈팀을 응원하는 모습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KIA 구단은 7일 경기 관전 환경을 개선과 선수 육성 시스템 구축하기 위해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와 퓨처스 구장인 챌린저스필드에 11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95억원을 들여 챌린저스필드 내에 3군 선수단 전용 야구장을 추가로 조성하고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3차원 척추안정화 장비, 산소탱크 치료기, 아쿠아 마사지 장비, 돗토리 재활센터 장비 등을 갖춘 재활센터를 신축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투자인데, 더 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앞서 KIA는 2013년 8월 전남 함평에 250억원을 들여 2,3군 전용 훈련장인 챌린저스필드를 마련했다. 또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후면석 의자를 메이저리그식 프리미엄 의자로 교체하고, 어린이 팬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총 15억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지난 2년간 KIA 구단은 이미 시설 개선에 65억원을 썼다. 혜택은 결국 광주시민에게 돌아간다. 시민 혈세가 아닌 구단이 부담해 진행한 일이다.

광주시가 10여년 전 일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KIA 타이거즈는 광주시민을 상대로 수익을 내는 기업이 아니라 광주시민을 위한 팀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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