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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감독 "모른척 화장실가고 싶다"고 한 이유는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10-14 17:30


"가끔은 일부러 화장실에 가고 싶기도 해요."


2015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1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렸다. 경기전 두산 김태형 감독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목동=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0.14/
비디오 합의 판정 제도가 생기면서 종종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심판의 판정이 나왔을 때 선수가 먼저 펄쩍 뛰며 벤치를 향해 합의 판정을 요청해달라는 제스추어를 하는 모습. 흥분된 표정으로 덕아웃을 향해 손가락으로 네모를 연신 그려댄다. 이걸 바라보는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할까. 선수의 투혼이 대견하거나 고맙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난처함에 빠지기도 한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가끔씩은 못본 척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고 표현했다.

14일 목동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앞둔 김 감독은 전날 3차전의 몇 가지 장면을 복기했다. 두산 입장에서는 바로 9회초 오재일의 사구가 인정받지 않은 장면이 가장 아쉬웠을 것이다. 넥센 조상우가 던진 슬라이더가 오재일의 왼쪽 발쪽으로 향했다. 오재일은 이 공이 왼쪽 발등에 맞았다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이영재 주심은 맞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한참동안 오재일의 항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두산 김태형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는 1회말에 일찌감치 합의판정 기회를 썼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현수가 1회말 1사 1루에서 윤석민이 친 공을 펜스에 부딪히며 잡는 듯 했다가 놓쳤다. 심판진은 완전한 포구 이후 연속 동작에서 떨어트린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을 잡았다고 생각한 김현수는 애매한 손짓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두산이 합의판정을 신청했다. 성공했다만, 기회가 한 번 더 남았겠지만 실패였다. 못잡았다는 원심이 인정됐다. 결국 이로 인해 9회에 나온 오재일의 사구는 번복되지 않았다. 합의판정 기회가 있었다면 사구로 판정이 바뀔 수 있었다.

이에 관해 김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는 경기 초반에는 아꼈다가 나중에 쓰고 싶다. 하지만 선수가 워낙 확신에 차 있어서 원한다면 웬만하면 들어준다"고 했다. 김현수에 대해서도 그래서 1회에 합의판정을 신청했다는 것. 하지만 선수의 요청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줄 수도 없다. 합의판정은 승부의 향방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다. 아껴서 최적의 타이밍에 써야 한다.

그래서 감독에게는 선수가 원하는 합의 판정을 어느 선까지 들어주느냐에 관한 고민도 있다. 김 감독은 "경기를 하다보면 별 상황이 아닌데도 도루 등의 개인 기록 때문에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초반에 4~5점 이상 앞선 2사 후에 도루를 시도했다가 합의 판정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안해주고 싶기도 하다. 차라리 외면하고 화장실에 가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개인보다 팀 전체를 챙겨 이끌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은 그런 김 감독이 택한 피난처였던 것이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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