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 외야수 변신'은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한화 이글스의 어엿한 전술 옵션이었다. 정근우가 아예 선발 중견수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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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6일 만의 외도, '선발 중견수 정근우'
정근우가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것은 무려 3166일 만이다. 거의 10년 동안 해보지 않았던 포지션의 선발 출전이라는 뜻. 그가 마지막으로 선발 중견수를 했던 경기는 지난 2006년 9월26일. 공교롭게도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였다. 당시 정근우는 조범현 감독이 지휘하던 SK 소속의 입단 2년차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붙박이 2루수는 아니었다. 내야와 외야를 오갔다.
그러던 정근우가 다시 외야로 나가게 된 건 전날부터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 26일 대전 KIA전에서 주전 외야수 김경언이 종아리에 사구를 맞아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한 뒤 외야 전력의 약화를 고민했다. 더구나 최근 주전 중견수인 이용규도 허리 근육통으로 컨디션이 떨어져 있는 상황. 그래서 김 감독이 떠올린 카드가 바로 정근우의 외야수 변신이었다. 미리 26일 경기를 마친 뒤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수비 훈련을 시키며 가능성을 시험했다. 일부 타자들이 특타를 하는 동안 정근우는 외야 중앙으로 나가 타구를 잡는 훈련을 했다.
김 감독은 당시 "지금 우리 팀 사정상 정근우가 외야를 맡아줘야 할 수도 있다"며 정근우의 외야수 훈련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27일 경기에서 그런 상황이 나왔다. 역전을 위해 다양한 대타 카드를 쓰면서 외야 요원이 사라지자 정근우가 2루에서 중견수로 나가게 된 것. 이때까지만 해도 '외야수 정근우'는 경기 막판에 일시적으로 나오는 카드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김 감독의 의중은 그게 아니었다. 아예 선발로도 내보낼 생각이었다. 김 감독은 28일 경기를 앞두고 "중견수 정근우는 가끔이 아니라 앞으로 많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이용규의 컨디션이 회복되고, 무엇보다 김경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런 변칙 라인업이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다. 물론 27일 경기처럼 경기 후반에 포지션을 바꾸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허무하게 실패해버린 '야신'의 실험
하지만 이날 '정근우 중견수 선발' 카드는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귀결됐다. 정근우의 수비가 안정감을 주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1회초 KIA 선두타자 김원섭의 짧은 타구를 두고 유격수 권용관과 콜 사인이 맞지 않는 바람에 2루타로 만들어준 것이 원인이다.
김원섭이 친 타구는 2루에서 약간 외야쪽으로 치우친 곳을 향했다. 통상적이라면 중견수가 앞으로 뛰어나와 잡아야 하는 타구. 일반적인 중견수라면 잡기 어려운 타구라 볼 수 없다. 정근우도 열심히 앞으로 달려나왔다. 하지만 권용관도 마찬가지로 타구를 쫓아갔다. 아무래도 중견수 경험이 희박한 정근우가 잡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한 듯 했다.
점점 가까워지던 두 선수는 결국 누구도 공을 잡지 못했다. 명확한 콜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결국 김원섭의 2루타로 기록됐고, 한화 선발 탈보트는 1회부터 실점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실점은 나오지 않았지만, 선발을 불안하게 만든 수비였다.
결국 정근우는 2회초 수비 때 다시 2루수로 돌아왔다. 중견수로는 우익수 자리에 나갔던 이용규가 이동했고, 우익수 자리에는 송주호가 9번 2루수로 선발 출전한 강경학과 교체돼 들어왔다. 한화로서는 강경학을 선발 2루수로 투입했다가 1회만에 교체하면서 경기 후반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교체 요원 1명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야신'의 실험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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