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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와 주전의 세계, 김경문 감독의 메시지[이명노의 런앤히트]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5-05-14 10:20 | 최종수정 2015-05-14 10:20


"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돼."

최근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입에 달고 사는 얘기다. 프로에서 주전의 세계는 오묘하다. 주전 자리를 꿰차는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선결조건은 기존 주전의 이탈이다. 김 감독이 이러한 얘기를 자주 꺼내는 건 지난 2년간 NC의 주전 3루수였던 모창민이 부진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멀티 내야수 지석훈이 3루 주전으로 맹활약하는 데서 나왔다.


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BO리그 kt와 NC의 경기가 열렸다. NC가 kt에 11대2로 승리하며 시리즈 스윕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NC 선수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5.03
프로야구에서 주전 얘기가 나올 때 대표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사례다. 1925년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 윌리 핍은 두통으로 한 경기를 결장했다. 그 대신 출전한 선수가 루 게릭이었다. 게릭은 그날 이후 14년동안 2130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게릭과 달리, 핍은 3년 후 초라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주전들이 자리를 비우는 이유는 많다. 어디가 아파서,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아니면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벤치에 앉는다. 하지만 이때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선수들은 차고 넘친다. 우리가 흔히 '백업 선수'라고 부르는 이들은 호시탐탐 자신에게 기회가 오길 기다린다.

모창민도 SK 와이번스에서 뛸 때에는 백업 선수였다. 확실한 자기 자리 하나 없이 내야와 외야로 돌던 멀티플레이어였다. 주포지션인 3루에 최 정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NC에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되면서 주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백업 생활을 오래 하다 주전이 된 선수들은 "내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벤치에서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던 이들은 자신의 타석이 왔을 때 뭔가 보여주려는 심리가 강하게 앞선다. 여유가 없다 보니,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반대로 주전들은 '지금 못 치면 다음 타석', '오늘 못 치면 내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침착히 자기 스윙을 하려 한다.


지난 2년간 NC 다이노스의 주전 3루수였던 모창민은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멀티 내야수 지석훈에게 3루 주전 자리를 내줬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3.28.
하지만 영원한 주전이란 없다. 나이가 들거나 부상이 생기고, 부진에 빠지면 후보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지난 2년 전 모창민이 NC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했던, "이제 내일이 있다"는 말을 올 시즌 지석훈도 똑같이 하고 있다.

과거 한 베테랑 사령탑은 "1군 엔트리에서 10명 정도는 나의 적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투수와 야수를 포함해 주전과 주축 선수들을 제외한, 10명 가량의 선수들은 감독이 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로, 그것도 1군까지 온 선수라면 '왜 내가 주전이 아닌데'라는 불만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백업 선수들이 자신이 나갔을 때 그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감독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김경문 감독도 이러한 측면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외국인 타자 제도 도입 후 1루수 자리를 뺏긴 조영훈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영훈이도 사람인데, 감독이 미울 것이다. 그런데 표시를 내지 않고, 덕아웃에서 고참으로 파이팅을 외쳐준다. 감독은 그런 걸 다 안다. 노력하는 걸 보면 감독이 꼭 도와주고 싶은 선수"라고 했다.


지석훈은 2년 전 주전 자리를 따낸 모창민이 했던 "내일이 있다는 게 자장 다르다"는 말을 똑같이 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3.18
'믿음'과 '뚝심'으로 유명한 김 감독도 최근에는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아무리 주축 선수라도 그라운드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경기 초반부터 교체를 지시한다. 타석에서 두 차례나 스트라이크를 지켜보다 삼진아웃된 나성범이 그랬고,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1이닝만에 교체된 테임즈가 그랬다.

기존 주전 선수들에게 지석훈과 조영훈 같은 선수들이 뒤에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이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 오늘도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주전 자리를 위해 전쟁을 펼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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