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돼."
최근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입에 달고 사는 얘기다. 프로에서 주전의 세계는 오묘하다. 주전 자리를 꿰차는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선결조건은 기존 주전의 이탈이다. 김 감독이 이러한 얘기를 자주 꺼내는 건 지난 2년간 NC의 주전 3루수였던 모창민이 부진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멀티 내야수 지석훈이 3루 주전으로 맹활약하는 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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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BO리그 kt와 NC의 경기가 열렸다. NC가 kt에 11대2로 승리하며 시리즈 스윕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NC 선수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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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주전 얘기가 나올 때 대표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사례다. 1925년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 윌리 핍은 두통으로 한 경기를 결장했다. 그 대신 출전한 선수가 루 게릭이었다. 게릭은 그날 이후 14년동안 2130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게릭과 달리, 핍은 3년 후 초라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주전들이 자리를 비우는 이유는 많다. 어디가 아파서,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아니면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벤치에 앉는다. 하지만 이때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선수들은 차고 넘친다. 우리가 흔히 '백업 선수'라고 부르는 이들은 호시탐탐 자신에게 기회가 오길 기다린다.
모창민도 SK 와이번스에서 뛸 때에는 백업 선수였다. 확실한 자기 자리 하나 없이 내야와 외야로 돌던 멀티플레이어였다. 주포지션인 3루에 최 정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NC에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되면서 주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백업 생활을 오래 하다 주전이 된 선수들은 "내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벤치에서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던 이들은 자신의 타석이 왔을 때 뭔가 보여주려는 심리가 강하게 앞선다. 여유가 없다 보니,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반대로 주전들은 '지금 못 치면 다음 타석', '오늘 못 치면 내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침착히 자기 스윙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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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NC 다이노스의 주전 3루수였던 모창민은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멀티 내야수 지석훈에게 3루 주전 자리를 내줬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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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주전이란 없다. 나이가 들거나 부상이 생기고, 부진에 빠지면 후보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지난 2년 전 모창민이 NC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했던, "이제 내일이 있다"는 말을 올 시즌 지석훈도 똑같이 하고 있다.
과거 한 베테랑 사령탑은 "1군 엔트리에서 10명 정도는 나의 적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투수와 야수를 포함해 주전과 주축 선수들을 제외한, 10명 가량의 선수들은 감독이 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로, 그것도 1군까지 온 선수라면 '왜 내가 주전이 아닌데'라는 불만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백업 선수들이 자신이 나갔을 때 그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감독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김경문 감독도 이러한 측면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외국인 타자 제도 도입 후 1루수 자리를 뺏긴 조영훈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영훈이도 사람인데, 감독이 미울 것이다. 그런데 표시를 내지 않고, 덕아웃에서 고참으로 파이팅을 외쳐준다. 감독은 그런 걸 다 안다. 노력하는 걸 보면 감독이 꼭 도와주고 싶은 선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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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훈은 2년 전 주전 자리를 따낸 모창민이 했던 "내일이 있다는 게 자장 다르다"는 말을 똑같이 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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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뚝심'으로 유명한 김 감독도 최근에는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아무리 주축 선수라도 그라운드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경기 초반부터 교체를 지시한다. 타석에서 두 차례나 스트라이크를 지켜보다 삼진아웃된 나성범이 그랬고,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1이닝만에 교체된 테임즈가 그랬다.
기존 주전 선수들에게 지석훈과 조영훈 같은 선수들이 뒤에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이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 오늘도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주전 자리를 위해 전쟁을 펼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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