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즌이 끝나고 서건창은 LG 트윈스 라커에서 짐을 챙겼다. 그때 어머니 정수현씨(51)는 아들에게 "야구 계속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했는데도, 서건창은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겠다며 대학 진학 대신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방출됐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에게 처음으로 다른 인생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서건창은 "당연히 야구를 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한테 꼭 성공한 모습 보여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돌아보면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서건창은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는데,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강해 보이는 척 해야했다.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잘할 자신은 있었다"고 했다.
2012년 시즌 개막을 눈앞에 두고 주전 2루수 김민성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백업 서건창에게 갑자기 개막전 2루수 선발 출전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에 김민성을 3루수로 밀어낸 서건창은 덜컥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2년 뒤 하늘같은 광주일고 대선배 이종범을 넘어 프로야구 사상 첫 200안타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MVP가 됐다.
서건창은 18일 서울 더케이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MVP-최우수 신인선수 및 각 부문별 시상식에서 MVP를 수상했다.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 투표에서 유효표 99표 중 77표를 받았다. 득표율 77.8%. 워낙 쟁쟁한 후보들간의 대결이라 결선투표가 예상됐으나 200안타 신기록에 표가 쏟아졌다. 3년 연속 MVP를 노렸던 박병호가 13표로 2위, 강정호가 7표, 밴덴헐크가 2표를 받았다. 서건창은 MVP 트로피와 함께 3700만원 상당의 K7 승용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시상식이 끝난 뒤 만난 서건창의 어머니 정수현씨는 "200안타를 쳤을 때도 눈물이 났는데, 오늘도 눈물이 났다. 아들이 정말 장하고 대견하다"고 했다. 정씨는 이어 "자기가 목표를 세우면 해내는 성격인데,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 몰랐다"면서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한 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들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짠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나홀로 서건창과 여동생을 키웠다. 서건창이 인터뷰마다 어머니 얘기를 빼지 않는 이유다.
아들을 믿음으로 키웠다. 정씨는 "아들을 키우면서 마음을 쓴 적이 없다. 프로 지명이 안됐을 때 제일 걱정됐지만, 금방 일을 찾아서 하더라"며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라 항상 물어본다. 생각을 깊게 하고 신중해 틀린 행동을 한적이 없다"고 했다.
서건창이 인터뷰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실제로 살가운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정씨가 아들에게서 받은 최고의 애정표현은 "어머니 덕분입니다"였다. '우리 아들 장해'라고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면, 항상 '어머니 덕분입니다'라는 답장이 날아온단다.
서건창은 이날 MVP 트로피를 옆에 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께서 잘 키워주셨기 때문에, 어머니 덕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성공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 더 보답하고 효도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아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한 홀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아들. 그들은 이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자였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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