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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과 삼성, 다윗과 골리앗 혹은 극과 극의 싸움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11-03 05:58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4 프로야구 LG와 넥센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렸다. 5회초 무사 1,2루서 넥센 이성열의 1타점 적시타 때 홈에 들어온 2루주자 김민성이 박병호와 환호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uyngmin@sportschosun.com / 2014.10.30.

결국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 2위 넥센 히어로즈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됐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후 열리는 32번째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매치업이 완성됐다. 내년 시즌에 1군에 진입하는 kt 위즈를 포함해 국내 프로야구 10개 팀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는 두 팀의 격돌이다.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노리는 있는, 2000년대 이후 최고의 팀 삼성에 맞서는 히어로즈는 신흥강호 정도로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삼성이 '전통의 명가'라면, 2008년에 출범한 히어로즈는 신생팀이나 마찬가지다. 구단 역사만 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33세 청장년과 7세 소년의 맞대결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는 몇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장원삼을 산 라이온즈'와 '장원삼을 판 히어로즈'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라이온즈와 모기업이 없이 스폰서와 입장권, 중계권, 마케팅을 톨해 운영비를 조달해 온 히어로즈. 넥센 선수들의 유니폼과 모자, 헬멧에는 수많은 기업들의 이름과 브랜드 로고가 찍혀 있다. 홈구장인 서울 목동야구장 내외야 펜스, 외야 그물망에는 치킨업체, 보험, 대학교, 사무기기업체까지 각종기업 광고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다소 어지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히어로즈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물론, 삼성은 가장 풍족한 지원 속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팀이다.

대다수 구단 관계자들은 삼성의 한 해 운영비를 400억원 안팎으로 추정한다. 500억원에 육박한다는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없이 팀을 끌어가면서 '돈성' 이미지를 많이 털어냈다고 해도, 삼성은 여전히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가장 확실한 팀이다. 최고의 팀답게 최고의 선수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면서,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금액도 다른 구단보다 월등히 많다고 한다.

운영비를 기준으로 보면 라이온즈는 대기업, 히어로즈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히어로즈의 올 시즌 구단 운영비는 200억원대 중반이다. 지난 해에는 200억원대 초반이었는데, 팀 성적이 올라가면서 인건비가 증가했다. 물론, 올해도 50억원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 구단 자체 2군 구장이 없어 전남 강진베이스볼파크를 임대해 쓰다가 올해부터 경기도 화성볼파크를 사용하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성장해 온 히어로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에서 모기업이 없는 팀은 히어로즈뿐이다. 대기업 구단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 대기업들의 이너서클같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히어로즈가 마침내 한국시리즈에 올라 대기업 구단의 대표격인 삼성과 만나게 된 것이다.

출범 초기에 운영비 조달에 어려움이 컸던 히어로즈는 좌완 투수 장원삼을 현금 30억원을 받고 라이온즈로 트레이드시키려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결국 현금과 선수를 받는 조건으로 삼성으로 보냈는데, 장원삼은 지금 삼성 선발진의 주축이다.


현재 라이온즈 주축 타자 대다수는 삼성의 울타리에서 커 온 선수들이다.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선수 육성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히어로즈 타선의 주축 선수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지금 자리에 섰다.


삼성 이승엽과 넥센 박병호가 같은 시대에 나와 경쟁을 했다면 누가 이겼을까. 스포츠조선DB
널리 알려진 것처럼 사상 최초로 200안타를 넘긴 1번 타자 서건창, 52홈런을 때린 4번 타자 박병호는 LG 트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가 인정받지 못하고 방출됐거나 트레이드가 된 선수다. 3루수 김민성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내야 백업으로 있던 선수다. 박동원과 함께 안방을 지키고 있는 포수 허도환은 두산 베어스 출신으로 병역의무를 마치고 테스트를 통해 히어로즈에 합류했다. 하위타선의 거포 이성열은 LG, 두산을 거쳤고, 주장인 이택근은 LG로 이적했다가 복귀한 케이스다.

이들 주축 타자들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고, 우여곡절 끝에 새 팀 히어로즈에서 야구인생을 바꿨다. 히어로즈의 막강 타선은 지난 몇 년 간 꼼꼼하고 착실하게 근육을 만들고 키웠다. 실력을 키워 차근차근 입지를 넓혀 온 선수들이다. 삼성 타자들과 뿌리가 다르다.

전성기가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박병호와 이승엽, 신구 홈런왕의 활약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지난 해 히어로즈는 삼성을 상대로 8승1무7패를 기록, 팀 출범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상대전적에서 앞섰다. 올해도 7승1무8패로 팽팽했다.

구약성서 사무엘서를 보면,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오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엘라 계곡 건너편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나와 맞설 사람을 뽑아 보내라"며 결투를 신청했다. 청동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한 그는 키가 여섯 큐핏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됐다고 한다. 오늘 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키가 3m에 육박하는 거인이었다. 골리앗은 40일 밤낮으로 나타나 결투를 제안했다. 결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유대왕 사울왕이 내준 투구가 무거워 벗을 정도였던 양치기 소년 다윗의 승리였다. 구약성서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다윗왕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화로 보는 학자도 있다.

3000년 이야기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야구팬들이 히어로즈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다윗과 골리앗 일화를 떠올릴 것 같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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