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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인터뷰 "시즌 끝날 때까지 나는 LG 사람"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4-10-03 06:49



"LG 트윈스가 정말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 그걸로 됐습니다."

김기태 전 LG 트윈스 감독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음악이다.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다. LG 선수들이 잠실 홈 경기에서 수비 위치로 뛰어갈 때 나오는 응원 음악이다. LG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5개월이 지났는데도 그의 휴대폰 벨소리는 LG 응원가다. 김 전 감독은 멋쩍은 듯 웃으며 "올시즌 LG 야구가 막을 내릴 때까지 나는 LG 사람이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지난 4월 23일 대구구장. 김 전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덕아웃에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결국 감독 없이 치러졌다. 이병규(9번)와 이진영 등 베테랑 선수들은 감독을 데려오겠다며 경기장을 떠나려 했다. 구단 관계자들이 겨우 뜯어말려 경기가 진행됐다.

경기 종료 후 김 전 감독의 자진 사퇴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경기에서 패한 LG는 4승1무12패로 9개 팀 중에서 꼴찌. 개막에 앞서 우승권 전력으로 평가됐던 LG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김 전 감독은 지난 시즌에 팀을 11년 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끈 지도자다. 당연히 너무 즉흥적이고 섣부른 결정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구단은 김 전 감독을 복귀시키겠다고 했으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최근 몇 차례 자리를 함께한 김 전 감독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김 전 감독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팀이 반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팀 분위기가 처진 상황에서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회복 불능의 상황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꼴찌이던 LG는 5월 초에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후 분위기를 일신해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다. 김 전 감독 시절과 팀 운용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같은 선수들이 야구를 하고 있다.

김 전 감독은 사퇴 과정에서 두 가지 논란을 일으켰다.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를 발표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 구단이 책임을 물어 경질을 하면서도 자진 사퇴로 포장을 한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은 달랐다. 감독이 떠나겠다는데, 구단이 붙잡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연히 구단과 김 전 감독의 불화설이 나왔다.

김 전 감독은 "감독 일을 하다보면 구단과 관계가 100% 원만할 수는 없다"면서도 "당시 구단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사퇴 하루 전인 4월 22일 김 전 감독의 면담 요청에 숙소방을 찾았던 백순길 단장도 "김 전 감독이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부진하던 리오단을 바꿔달라는 얘기를 할 줄 알았다. 속으로는 바꿔달라면 알겠다는 대답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김 전 감독을 찾았었다"고 했다.


두 번째 문제가 더 중요했다. 어찌됐든 김 전 감독은 당시 LG 지휘봉을 잡고 있었는데도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너무 이른 시점에서 사실상 팀을 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김 전 감독은 이에 대해 "한 번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흔들리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정말 수천 번 생각을 해 결정을 하고 구단에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다. 구단이 말린다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경기장에 나가는 게 더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경기장에 나가지 못한 부분은 지금도 팬과 야구 관계자들께 죄송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 전 감독은 이어 "시간이 조금 흐르니 현장에 남겨두고 온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눈에 밟혀 마음이 아팠다. 코칭스태프의 동반 사퇴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내가 너무 성급했나, 잘못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큰 문제 없이 수습이 되더라. 그 때부터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팀을 떠나기 전에 코칭스태프 앞에서 "앞으로 나를 평생 보기 싫으신 분들은 그만두시라.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LG를 지켜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김 전 감독은 신변을 정리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한 미국에 있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김 전 감독은 두 아들의 야구 경기를 응원하며 보고, 여행도 다니는 등 그동안 하지 못한 아빠 역할을 열심히 했다. 야구에 대한 끈도 놓지 않았다. 가족이 있는 아이다호주 보이시와 가까운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정말 복잡했던 머리가 가족과 함께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됐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아시안게임 한국대표팀의 훈련과 경기들을 지켜보고 응원했다. 그는 "나는 야구인이다. 야구인이기에 야구장에 나오는 게 즐거웠다. 주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내가 떳떳하면 되는 일이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김 전 감독은 지난달 18일에 열린 대표팀과 LG의 연습경기 때 잠실구장을 찾았다. 그는 "대표팀에 조계현 코치도 계시고, LG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았다"고 했다. 물론, 양상문 감독과도 만났다. 양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온전히 이끌지 못했던 팀을, 너무나 훌륭한 팀으로 바꿔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이날 경기에서 만년 거포 유망주 최승준이 김광현(SK 와이번스)을 상대로 대형 홈런을 터트리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김 전 감독은 "이런 말을 하면 주변에서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올시즌 LG 야구가 끝날 때까지는 LG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4위 싸움을 하고 있는 LG가 꼭 꿈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때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김 전 감독의 응원이 LG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을까. 4위 LG는 3일 넥센 히어로즈전을 시작으로 남은 10경기 일정에 들어간다.

이제 야구인 김기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김 전 감독은 "2014년은 내 인생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운 해다. 어린 나이에 최고 명문팀 감독직을 맡는 영광을 누렸다. 이 커리어가 앞으로 내 야구 인생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방해가 될 지는 전적으로 내가 풀어갈 숙제다. 앞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게 현재 가장 큰 목표다. 당연히, 야구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하지 않겠나.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고 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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