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최고의 영예인 사이영상은 확실해 보인다. 이제 남은 건 MVP(최우수선수)다. LA 다저스의 좌완 클레이튼 커쇼가 46년 만에 사이영상-MVP 동시수상에 도전한다.
메이저리그에서 MVP 레이스는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투수는 야수보다 출전 경기수가 적어 MVP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5일에 한 번씩 등판하는 선발투수나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짧은 이닝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들 모두 매일 같이 경기에 나서는 타자들에 비해 기여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
실제로 사이영상이 생긴 1956년 이후 투수가 사이영상과 MVP를 석권한 건 총 10차례밖에 없었다. 2011년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24승5패, 평균자책점 2.40, 탈삼진 250개를 기록하고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과 MVP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 올린 게 마지막이었다. 1992년 데니스 에커슬리(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이후 19년 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에커슬리는 1992년에 51세이브를 기록, 메이저리그 최초로 선발 20승과 마무리 5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했다.
1980년대에는 1981년 롤리 핑거스(밀워키 브루어스)와 1984년 윌리 헤르난데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86년 로저 클레멘스(보스턴 레드삭스)가 두 상을 동시에 받았다. 핑거스와 헤르난데스는 에커슬리와 함께 마무리 투수로서 MVP-사이영상을 독식한 세 명의 주인공이다.
이들 외엔 모두 선발투수였다. 사이영상이 만들어진 1956년에 돈 뉴컴(브루클린 다저스), 1963년에 샌디 쿠팩스(LA 다저스)가 MVP의 영예를 안았는데, 이때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양대리그에서 한 명에게만 사이영상을 수여했다. 1968년 양대리그 사이영상의 주인공 밥 깁슨(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대니 맥레인(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이 나란히 MVP를 수상했고, 1971년 바이다 블루(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내셔널리그로 한정하면, 사이영상-MVP 석권자는 확 줄어든다. 1956년 뉴컴과 1963년 쿠팩스, 그리고 1968년 깁슨을 끝으로 내셔널리그에서 동시수상은 나오지 않았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에선 상대적으로 투수 MVP가 많이 배출됐다. 하지만 내셔널리그에선 여전히 투수들에게 MVP를 내주는 것에 대해 인색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커쇼는 압도적이다. 부상으로 한동안 등판하지 못했는데도 14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18승3패, 평균자책점 1.67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 한 달 넘게 등판하지 못해 이닝수가 다소 적지만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다승 공동 1위 투수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점만 봐도 독보적이다.
현지 언론에선 이미 '만장일치 사이영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MVP 가능성마저 솔솔 피어 오르고 있다. 강력한 MVP 경쟁자였던 지안카를로 스탠튼(마이애미 말린스)이 지난 12일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는 부상을 당했다. 스탠튼은 부상 전까지 타율 2할8푼8리 37홈런 105타점으로 내셔널리그 홈런-타점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투고타저로 평가받는 올시즌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인상 깊은 활약이었다. 하지만 스탠튼의 시즌 내 복귀가 불투명해지면서 커쇼가 '사이영상-MVP 동시석권'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