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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LA다저스타디움의 관중석은 술렁였다. 그와는 반대로 LA다저스 덕아웃은 정적으로 물들어갔다. 다저스 동료들은 류현진의 주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말조차 붙이지 않았다. 집중력에 행여 방해가 될까 우려해서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뛰어난 호투로 시즌 5승(2패)째를 따냈다. 이날 최종기록은 7⅓이닝 3안타 7삼진 3실점. 불펜진이 류현진이 내보낸 주자를 홈에 불러들이는 바람에 위기가 있었지만, 마무리 투수 켄리 젠슨이 1점차 리드를 지켜내며 4대3 승리를 완성해 류현진에게 승리를 안겼다.
아쉽게 무산된 퍼펙트 게임
상황이 이렇게되자 다저스타디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상대팀인 신시내티 덕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의식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끝내 대기록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LA다저스가 4-0으로 앞선 8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상대 4번타자 토드 프레지어가 류현진의 기록 달성을 막았다.
초구 볼에 이어 2구째로 류현진이 선택한 구종은 체인지업. 초구와 마찬가지 구종이다. 133㎞의 공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오자 힘차게 타구를 받아쳤다. 배트 중심에 걸린 타구는 점프한 다저스 3루수 저스틴 터너의 머리 위를 넘어 3루 파울선상 안쪽에 떨어진 채 외야까지 굴러갔다. 이날 류현진이 22번째 타자에게 내준 첫 안타는 2루타였다. 퍼펙트 기록이 깨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류현진에게 격려의 박수 세례를 보냈다.
대기록 달성에 불과 아웃카운트 6개만 남겨둔 시점에서 일격을 당한 류현진은 흔들렸다. 이후 루드윅에게도 좌전안타를 맞았다. 결국 류현진은 무사 1, 3루에서 헤이시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첫 실점까지 허용했다. 대기록 무산에 이어 실점까지 하자 류현진의 집중력은 크게 떨어졌다. 페냐에게도 좌전안타를 맞아 1사 1, 2루를 허용한 뒤 브라이언 윌슨과 교체됐다.
퍼펙트 기록은 메이저리그 145년 역사에서도 단 23번 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다. LA다저스 팀 역사에서도 지난 1965년 9월 10일 샌디 쿠펙스가 달성한 이래 49년 간 나오지 않았다. 실력과 운이 모두 따라야 이뤄낼 수 있다.
류현진은 운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3점을 뽑아낸 7회말 공격이 류현진의 리듬을 깨트리고 말았다. 1-0이던 7회말 선두타자 터너가 16구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낸 뒤 1사 후 아루에바레나의 2루타로 된 1사 2, 3루. 류현진이 타석에 나와 내야 땅볼을 쳤다. 그런데 신시내티 유격수 코자트가 잡았다가 떨어트리며 터너가 홈을 밟았다. 류현진은 1루에서 세이프.
결국 류현진은 계속 누상에서 주루 플레이를 펼쳐야 했다. 디 고든의 내야 땅볼 때 2루를 밟은 류현진은 크로포드의 우중간 2루타 때 3루를 돌아 홈까지 들어왔다. 이렇게 7회말에만 소요된 공격시간은 30분 가까이 됐다. 류현진도 배팅과 주루 플레이를 계속하느라 투구 리듬이 흔들렸다. 이 영향은 곧바로 이어진 8회초 선두타자의 2루타로 이어지고 말았다.
비록 이 공격으로 LA다저스는 확실한 승기를 잡았지만, 오히려 류현진의 '퍼펙트 리듬'에는 독이되고 말았다. 이전까지 빠르게 경기 흐름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공격이닝이 길어진데다 또 배팅과 주루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호흡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투수는 민감한 존재다. 특히 대기록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이라면 작은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저스 동료들이 경기 중반 이후 덕아웃에서조차 류현진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도 이런 특성을 감안한 배려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격이 잘 풀리면서 류현진은 퍼펙트 리듬을 놓쳤다.
환상적인 호투, 비결은 패스트볼의 위력
비록 퍼펙트 경기는 무산됐어도 류현진은 모처럼 LA 홈팬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알렸다. 그간 류현진은 원정경기에서는 막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홈에서는 계속 부진한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원정경기에서 보여줬던 호투를 홈 관중 앞에서 재현해냈다.
비결은 역시 강력한 패스트볼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커브와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모두 잘 던지는 '포 피치 투수'다. 그러나 변화구의 위력은 역시 강력한 패스트볼이 바탕이 될 때 한층 살아날 수 있다. 류현진은 이날 95개의 공을 던졌는데, 패스트볼을 49개 던졌다. 슬라이더는 8개로 아꼈고, 체인지업과 커브는 각각 17개와 21개를 활용했다.
기본적으로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찔러넣어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뒤 우타자의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커브나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리고 결정구로 다시 패스트볼을 던지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특히 이 때의 패스트볼은 포수의 머리 높이로 날아오는 라이징 패스트볼에 가까웠다.
그 결과 류현진은 이날 잡아낸 삼진 7개 중에 5개의 결정구로 패스트볼을 이용했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류현진이 던진 볼끝이 살아있는 패스트볼은 신시내티 타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