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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 80㎞로 159㎞를 압도한 사연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3-07-29 06:04


두산 유희관은 최고 130㎞대 직구와 느린 변화구로 LG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라이벌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28일 잠실구장. 경기전 원정팀 LG의 타격 훈련때 보기 드문 장면이 목격됐다. LG 배팅볼 투수가 타자들을 상대로 아주 느린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흔히 '아리랑볼'이라고 하는 초저 스피드 공을 쉴새없이 뿌리고 있었다. 이날 LG가 상대해야 할 두산 투수가 유희관이었기 때문이다. 유희관이 누구인가. 올시즌 70~100㎞대의 커브를 앞세워 선발 한 자리를 당당히 꿰찬 '느림의 미학'의 주인공이다. 유희관의 투구에 타이밍을 맞추려면 경기전부터 비슷한 공에 익숙해져 있어야 하는 까닭으로 LG는 배팅볼 투수로 하여금 느린 공을 던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유희관과 맞대결을 펼칠 LG 선발이 국내 최고의 강속구 투수인 리즈라 더욱 흥미를 끌었다. 리즈는 최고 150㎞대 후반의 강력한 직구가 주무기. 이번 3연전서 양팀이 전날까지 1승씩을 주고 받은 터에 스피드가 화제인 두 투수가 맞대결을 벌여 경기전부터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느림의 미학'은 현재진행형

이날 유희관이 기록한 직구 최고스피드는 133㎞. 투구수 116개 가운데 71개의 직구를 뿌린 유희관은 평소처럼 130㎞대 초반의 직구를 주로 던졌다. 여기에 100㎞대 커브와 118~123㎞대의 슬라이더 및 체인지업으로 LG 타자들을 상대했다. 유희관의 강점은 안정된 제구력과 타자의 허를 찌르는 느린 변화구. 6회 LG 문선재를 상대로 볼카운트 1B1S에서 던진 3구째 커브는 이날 최저인 80㎞로 측정됐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도 물오른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는 LG 타선은 1회부터 유희관을 괴롭혔다. 유희관으로서는 더욱 날카로운 제구력과 다양한 볼배합, 완급조절이 필요했다. 5⅓이닝을 8안타 3실점으로 막았지만, 매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위기에서 필요한 것은 제구력과 집중력. 1회 2사 만루에 몰린 유희관은 정성훈을 상대로 볼카운트 2B2S에서 5구째 이날 '최고' 스피드인 133㎞짜리 직구를 몸쪽 스트라이크존으로 찔러 넣어 삼진처리했다. 2회 1사 1루서는 문선재를 132㎞ 낮은 직구로 삼진으로 솎아낸데 이어 이날까지 17경기 연속 안타를 친 박용택을 108㎞ 커브로 땅볼로 잡아냈다.

이날 최대 위기는 2점을 내준 3회였다. 1사 1루서 정의윤에게 129㎞짜리 낮은 직구를 던지다 좌중간 적시 2루타를 허용한 뒤 이병규를 상대로도 132㎞ 직구를 한가운데로 꽂다 우중간 2루타를 맞고 다시 한 점을 내줬다. 제구가 되지 않은 직구는 딱 치기 좋은 수준. 그러나 정성훈을 사구로 내보낸 유희관은 1사 1,2루서 손주인과 윤요섭을 모두 느린 변화구로 땅볼로 잡아내며 추가실점을 막았다. 유희관이 올시즌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요인이 바로 3회에 보여준 경기운영능력. 5회 2사 2,3루서 윤요섭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도 좋은 예였다. 직구 위주로 풀카운트까지 끌고가다 결정구로 낮게 떨어지는 123㎞짜리 슬라이더를 던져 윤요섭의 배팅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았다.

유희관은 경기후 "비오는 상황에서 컨트롤과 밸런스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야수들과 뒤에 나온 (홍)상삼이와 (정)재훈이형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라고 한 뒤 리즈와의 맞대결에 대해서는 "리즈는 리즈대로 훌륭한 1급 투수이고, 나는 내 스타일대로 열심히 한 것 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책에 흔들린 '스피드왕'

리즈는 1회부터 150㎞대 직구를 마음껏 과시했다. 공 5개로 삼자범퇴를 하는 동안 150㎞대 직구를 사용했다. 2회에는 1사후 최준석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홍성흔을 127㎞짜리 슬라이더로 유격수 땅볼, 이원석을 151㎞ 직구로 1루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두산은 초반 리즈의 '광속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리즈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으로 앞선 3회말. 수비에서 나온 단 한 개의 실책이 리즈의 제구력을 흔들어 놓았다. 양의지와 김재호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 무사 1,2루. 이어 이종욱의 희생번트를 포수 윤요섭이 잡아 1루로 던진 것이 타자주자의 헬멧을 맞고 파울 지역으로 흘렀다. 그 사이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았고, 이종욱은 2루까지 진루했다. 이후 리즈의 직구는 한가운데로 몰리는 배팅볼 수준으로 전락했다. 계속된 1사 2루서 김현수가 150㎞짜리 직구를 받아쳐 중전적시타를 날려 4-2를 만들었고, 최준석이 우익수플라이로 아웃된 후 홍성흔은 147㎞짜리 평범한 직구를 공략해 중적적시타를 터뜨려 찬스를 1,2루로 이어갔다. 리즈는 이어 이원석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양의지와 김재호에게 150㎞대 초반 직구를 던지다 연속으로 적시타를 맞고 7실점째를 기록했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이닝이었다. 리즈는 4회 민병헌을 상대로 159㎞짜리 직구를 던지는 등 시종 위력적인 속도를 과시했지만, 한 순간 발생한 제구력 난조에 그의 '스피드쇼'는 묻히고 말았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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