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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펜스', 보강 아닌 파괴가 필요하다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3-06-10 18:25 | 최종수정 2013-06-11 06:25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2013 프로야구 경기가 8일 인천구장에서 열렸다. 3회초 2사 1,2루 두산 홍성흔의 타구를 잡으러가던 SK 좌익수 이명기가 펜스에 부딪히며 부상을 당하고 있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이명기는 교체됐다.
인천=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

30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9회초 무사서 두산 홍성흔의 파울 타구를 잡으려던 롯데 정훈이 펜스에 충돌하며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부산=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흉기펜스'는 즉각 고쳐야 한다. 두말할 필요없는 당연한 명제다.

올해에만 아찔한 장면에 세 차례나 나왔다. 이명기(SK)는 지난달 8일 인천 두산전에서 펜스에 강하게 충돌, 왼쪽 발목 인대손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지난달 30일에는 부산 두산전에서 정 훈(롯데)이 정신을 잃고 들것에 실려나갔다. 9일 대구 삼성전에서 오재원(두산)이 1루 펜스에 무릎을 부딪혀 교체됐다. 수많은 희생양이 있었다. 이용규(KIA) 정수빈(두산) 강동우(한화) 등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흉기펜스'를 없애기 위해서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 그리고 해당구장을 관리하는 지자체가 협의해야 한다. 그런데 믿을 수 없다. 10년 넘게 방치된 문제다.

스포츠조선은 이미 지난해 4월 17일자에 '야구장의 흉기 외야펜스, 딱딱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야구장 펜스의 안전성 문제를 심도있게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한화 정원석이 외야펜스에 손가락이 골절된 것을 계기로 위험한 펜스를 문제삼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당장 고칠 순 있는걸까.

어이없는 흉기펜스의 탄생

말도 안되는 '흉기펜스'는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현 펜스는 콘크리트 벽면에 EPDM(에틸렌 프로필렌) 재질의 딱딱한 고무시트가 덧댄 형태다. 당연히 딱딱할 수밖에 없다. 예전 고무시트보다 푹신한 매트리스를 덧댄 펜스도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의 스파이크에 찢어지면서 즉각적인 유지 및 보수가 힘들다는 이유로 딱딱한 고무시트가 등장했다. 안전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탁상행정 결과물이다.

너무나 부족한 보강작업


펜스가 문제가 되면서 일부 보강공사를 한 구장들도 있다. 대전구장은 한화와 대전시가 협의해 외야 및 1, 3루 측에 보강작업을 했다. 200㎜의 보호매트를 채워넣었다. 지난해 KBO에서 펜스 안정성 기준으로 보호매트 150㎜를 지정했다. 잠실과 목동에 보완작업도 들어갔다. 신생구단 NC 역시 예전 50㎜ 보호매트의 2배인 100㎜를 마산구장 펜스에 쓰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안전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 현장의 지적. 모 구단의 한 관계자는 "보호매트의 두께를 늘려도 여전히 위험하다. 펜스의 구조적인 부분을 완전히 바꿔야 안전사고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 KBO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구단 관계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이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가장 두터운 보호매트를 넣은 대전구장 펜스 역시 아직까지 안전성에 대한 테스트가 없는 상태다. 딱딱한 콘트리트에 덧댄 구조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

그럼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메이저리그를 보면 아무리 강하게 부딪쳐도 펜스는 완충 역할을 제대로 한다. 선수를 감싸듯 한순간 푹 꺼졌다가 다시 복원된다.

벽의 개념인 펜스와 스폰지같은 보호매트의 간격이 최소 10~15㎝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대로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재질의 보호매트를 쓰기 때문에 가능하다.

보호매트의 두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떨어진 간격으로 인한 탄력도가 선수보호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흉기펜스를 보완하는 게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KBO에서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정금조 운영기획부장은 "새로운 기준점을 마련하고 있다. 시공방식에서 펜스와 보호매트의 간격을 떨어뜨리고, 보호매트의 재질 역시 탄력도를 최대한 높힐 수 있는 것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왜 고쳐지지 않았나

왜 10년 넘게 흉기펜스를 방치했을까. 야구팬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KBO나 구단, 그리고 지자체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부분. 한마디로 펜스 안전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펜스에 대한 안전기준도 없었던 게 현실. KBO의 문제였다. 구단은 시설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에게, 지자체는 특유의 늑장대응으로 계속 '흉기펜스'를 방치했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가졌을 뿐, 구체적이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올해 수정작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KBO는 안정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 올 시즌이 끝난 뒤 구단과 지자체에 제시하기로 했다. 모든 구단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감시가 필요하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구장은 지자체가 각 구단에게 장기대여를 하거나 당일 대여의 형식으로 임대한다. 시설관리는 지자체에서 한다. 당연히 시설의 수정, 보완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10년 넘게 흉기펜스가 방치됐던 가장 큰 이유.

일단 펜스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구장은 내년 신축구장을 개장하는 광주밖에 없다. KIA 측은 "펜스에 대해서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설치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보강작업을 한 대전, 목동, 잠실 구장을 쓰고 있는 한화, 넥센, 두산, LG 등은 "안전함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자체와 협의해 다시 고칠 것"이라고 했다. 마산이나 대구를 쓰는 NC와 삼성도 마찬가지 입장.

문제는 행동이다. 현실적으로 '흉기 펜스'는 올 시즌까지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안전기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난 뒤가 문제다.

어떤 행동이 나오는 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 대구 구장의 경우 2016년에 신축구장에 지어진다. 앞으로 최소 3년간은 기존 구장에서 경기를 해야 하지만, 삼성과 대구시 측에서 펜스 보강작업을 할 지는 미지수다. 홈구장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창원시가 홈인 NC의 마산구장 역시 애매하다. 여전한 감시와 의지가 중요한 문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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