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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깜짝 포수 출전,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3-06-03 16:56 | 최종수정 2013-06-04 06:23



LG 문선재의 깜짝 포수 데뷔. 프로야구판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가장 소화하기 어렵다는 포수 포지션. 단 한 번도 포수로 출전한 경험이 없는 내야수가 9회부터 2이닝 동안 안방을 지키며 팀 역전승을 만들어냈으니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문선재 외에도 야수가 포수 마스크를 쓴 사례가 제법 있다. 당사자인 문선재와 그들의 얘기를 통해 갑자기 마스크를 쓰고 투수의 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들어봤다.

코치는 "뭉클했다"는데 선수는 "재밌었다"

사실, LG는 포수를 모두 소진했을 때를 대비해 보이지 않는 제3의 포수를 준비시켜놨었다. 중학교 때까지 포수를 봤던 내야수 최영진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3일 KIA전 때 LG 1군 엔트리에는 최영진의 이름은 없었다. 장광호 배터리 코치는 "일단 베테랑들을 빼고, 젊은 선수들을 찾아보니 문선재와 오지환 뿐이었다. 문선재가 '한 번 해보겠다'고 자원했다. 그 자체 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당시 LG 덕아웃에서는 "져도 어쩔 수 없는 경기"라며 문선재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생갭다 공을 잘 받았다. 장 코치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잘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타자로서 공을 보는 것과 포수로 공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무리 야구를 오래했다고 하더라도 무서울 수밖에 없다. 또, 공을 받는 왼쪽 엄지를 다치기 쉽다. 져도 좋으니 제발 다치지만 말았으면 생각했다. 정말 뭉클했다"고 했다.

이날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지켜봤다는 넥센 김동수 배터리코치도 "깜짝 놀랐다. 자세가 조금 높기는 했지만 나무랄데 없었다"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그런데, 정작 선수 본인은 하루가 지난 3일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느냐. 크게 긴장도 안 됐고 재밌었다"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문선재는 "가장 어려웠던건 땀이 흘러 안경이 자꾸 콧등에서 내려가 마스크 구멍사이로 손을 넣어 안경을 올려놓는 일이었다. 경험이 없다보니 생긴 일이었다"며 "상대선수가 출루했을 때, 다음 타자 초구부터 도루를 시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송구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기 후 하이라이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쭉 올리고있더라"라고 밝혔다.


이종범-최 정, 선배들의 경험담

한화 이종범 코치는 해태 선수 시절, 2번의 포수 출전 경험을 갖고있는 베테랑(?)이다. 96년 5월 22일 광주 삼성전에서 9회부터 포수로 출전했다. 연장 13회 이대진의 공을 빠뜨려 팀이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23일 대전 한화전에서 8회말부터 임창용과 배터리를 이뤘고, 9회 역전 만루홈런까지 때려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코치는 당시를 떠올리며 "원바운드 공을 받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일반적인 내야수들의 땅볼 수비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포수를 보겠다고 자청했다는 이 코치는 "원바운드볼 처리 외에 포구, 송구는 자신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첫 번째 삼성전에서 김재걸의 도루를 잡아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 유사한 경험을 한 선수는 SK 3루수 최 정. 최 정은 2011년 6월 17일 잠실 LG전에서 9회 포수마스크를 썼다. 1-4로 뒤지던 SK가 9회초 단숨에 5점을 내며 경기를 역전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포수 최경철 대신 박 윤을 대타로 투입해 남은 포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최 정은 마무리 투수 정우람과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팀 승리를 지키고 정우람의 세이브를 도왔다.

최 정은 "선수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내가 나가겠구나'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며 "포수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부터 머리 속으로 사인을 정리하는 것에만 힘썼다. 사인 교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을 해보지도 못하고 경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홈플레이트 뒤에 앉는 순간부터는 야구 선수의 본능이 작용한다. 공을 잡고, 던지는 일은 본능에 맡겼다"고 밝혔다. 단, 극도로 집중을 하다보니 1이닝을 소화했는데도 체력소모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문선재 대박 뒤엔 가려진 봉중근의 배려와 능력

문선재가 뛰어난 야구 센스를 발휘했다고 하지만, 결국 기존 포수들의 능력치에 100% 다가갈 수는 없었다. 문선재가 큰 문제 없이 경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마운드에 있던 투수 봉중근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LG 장광호 코치는 "우리는 보면 안다. 봉중근이 직구를 던질 때 100% 힘을 발휘하지 않았고, 잡기 어려운 코스로 던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변화구도 최소화했고, 최대한 원바운드가 되지 않게 던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초보포수 문선재를 위한 선배의 배려였다. 장 코치는 "봉중근이 올해 블론세이브가 없었다. 자칫했다가는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패배의 원흉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배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넥센 김동수 코치도 "의식적으로 직구 위주의 피칭을 하는 게 보였다"고 밝혔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KIA 선수들은 왜 도루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특히, 10회말 마지막 공격에서는 발빠른 김선빈이 선두타자로 나와 출루하고 타석에는 역시 발이 빠르며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김주찬이 있었다. 누구나 초보포수 문선재를 두고 김선빈이 도루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김선빈은 1루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여기에도 비밀이 숨어있었다. 장 코치는 "사실, 동점 상황이었기에 이동현, 임찬규 등이 등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가 출루할 상황을 대비해 코칭스태프가 봉중근을 밀어붙였다"고 했다. 봉중근은 1루 주자 견제에 있어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선수. 봉중근의 주자 견제가 상대에 뛸 수 있는 틈을 전혀 주지 않았고, 문선재가 공을 받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도운 것이다.

장 코치는 "문선재의 어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주자가 제 타이밍에 뛰었다면 아웃을 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야수는 공을 잡고 스텝을 밟으며 자신이 던지고 싶은 그립대로 공을 잡지만, 포수는 공을 잡자마자 그 그립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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