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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희망과 불안이 교차했다. LA다저스 류현진(26)의 두 번째 등판은 큰 틀에서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아직 빅리그 무대에 적응하는 과도기라고 평가하는 편이 적당하다.
류현진은 8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피츠버그 전에서 6⅓이닝 3안타(1홈런) 2볼넷 6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두 번째 등판만에 첫 승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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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류현진은 데뷔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초반에 난타를 당했다. 피츠버그 선두타자 스탈링 마르테에게 3구만에 좌전안타를 맞은 데 이어 1사 1루에서는 3번 앤드루 맥커친에게 좌월 2점 홈런을 허용했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공식경기 첫 피홈런이었다. 지난 샌프란시스코전에서도 류현진은 1회에 샌프란시스코 1, 2번 테이블세터진에 연속안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홈런으로 2점을 내준 1회만 제외하고는 한국무대를 평정했던 '괴물'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2회부터 7회 1사까지 류현진은 안타와 볼넷을 단 1개씩 밖에 내주지 않는 동안 삼진 6개를 곁들이며 경기를 지배했다.
그렇다면 왜 류현진은 두 경기 연속으로 1회에 흔들렸을까. 두 경기에서 나타난 초반 난조의 공통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직구, 즉 포심 패스트볼에서 찾을 수 있다.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이 초반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당한 것이다.
류현진의 한국 시절 직구 최고구속은 154㎞까지 나왔다. 마음만 먹으면 150㎞는 손쉽게 던졌다. 그런데 지난 샌프란시스코전이나 이번 피츠버그전에서 1회에 기록된 류현진의 직구 최고구속은 90마일, 즉 144㎞ 밖에 안됐다. 게다가 제구도 정확치 않았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는 손쉽게 장타를 만들 수 있는 공이다.
지난 경기와 이번 경기에서 초반에 맞은 안타가 모두 89마일(약 142㎞)의 포심패스트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전에서 류현진은 선두타자 앙헬 파간에게 초구와 2구 모두 89마일의 직구를 던졌다. 초구는 볼이었고, 2구는 한복판으로 몰리며 중전안타가 됐다.
피츠버그전도 마찬가지였다. 1회초 선두타자 마르테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한 3구째와 맥커친에게 홈런을 맞은 3구째가 모두 89마일짜리 포심패스트볼이었다. 특히 맥커친에게 홈런을 내준 3구째는 원래 포수가 바깥쪽 낮은 코스를 주문했지만, 한복판 높은 쪽으로 쏠리는 실투였다.
결론적으로 류현진의 직구 구속이 초반부터 살아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늘 경기 초반에는 고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1회에는 144㎞밖에 나오지 않던 포심패스트볼의 최고구속이 93마일(약 150㎞)로 높아진 2회 이후 류현진이 1안타 1볼넷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이같은 결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류현진이 이날 경기 후 "구속이 94마일까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직구 구속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도 이런 점을 체감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투구 패턴의 변화도 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또 너무 초반부터 직구 구속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오버페이스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선발의 중요한 미덕인 긴 이닝을 버텨내려면 각 이닝마다 적절한 체력 분배가 필요한 데, 섣불리 구속을 끌어올리려다가 무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어찌보면 류현진이 당면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스스로 그에 대한 해법을 보여줬다. 바로 뛰어난 변화구들을 활용한 투구 패턴의 변화다. 류현진은 파워 피처이면서도 제구력이 뛰어나고,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다양하다. 이런 강점을 적극 활용하면 초반에 직구 구속이 뜻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날 류현진은 1회초 맥커친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난 뒤 후속 산체스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이 시점부터 류현진은 투구 패턴을 바꿨다. 물론 이는 류현진과 호흡을 맞춘 다저스 포수 팀 페더로위츠의 공이기도 하다. 산체스에게 3개의 직구(포심 패스트볼)를 던져본 결과 구속이 여전히 90마일에 머물며 제구가 흔들린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일시적으로 포심을 봉인했다. 후속 멕켄리와 알바레스에게 8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류현진은 포심은 한 개도 던지지 않았다. 투심 패스트볼(2개)과 커브(2개) 체인지업(1개) 슬라이더(3개) 등 다른 구종을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이들을 모두 내야 땅볼로 처리했다.
이후에도 류현진은 2, 3회에는 포심의 비중을 크게 줄이고 투심과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적극 활용했다. 2~3회에 류현진이 던진 포심은 단 3개 뿐이었다. 대신 체인지업은 9개, 투심은 10개, 그리고 슬라이더는 3개를 던졌다.
그러다 4회 이후로는 또 패턴을 바꿨다. 몸이 슬슬 달아오르면서 포심의 구속이 회복되자 주무기를 포심으로 바꿔든 것이다. 4~6회 동안 류현진은 총 20개의 포심을 던진 반면, 체인지업은 12개, 슬라이더는 6개, 그리고 투심은 단 3개로 확 줄였다. 2~3회와는 정반대의 투구 패턴이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류현진의 변화구에 적응해가던 피츠버그 타자들은 또 다시 혼동에 빠졌다. 결국 4회 이후 류현진은 단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으며 '언터처블'의 본색을 회복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류현진도 스스로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영리한 류현진은 마운드에 올라 선 순간부터 내려올 때까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그에 맞춰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등판에서는 앞선 두 경기에 나타난 문제점이 한층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