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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전'이란 말은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누가 보기에도 이건 도전이다. 하지만 그는 어디가 됐든지 간에 즐겁고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했다. '컵스맨'이 된 임창용(37)을 19일(한국시각) 시카고 컵스의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 호호캄 볼파크에서 만났다.
하루종일 운동, '마이너리그 재활선수' 임창용의 하루
오전 9시30분, 호호캄 볼파크를 찾았을 때 임창용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메인훈련장과 떨어진, 주차장 옆에 위치한 마이너리그 훈련장이었다. 임창용은 이곳에서 '마이너리그 재활 선수'다. 지난해 7월 생애 두번째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뒤 꾸준히 재활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피칭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폼은 여전했다. 자세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팔상태도 좋아보였다.
"이제 시작한거죠." 캐치볼 후 트레이너와 대화를 나눈 그가 입을 열었다. 현재 얼마나 진행됐느냐고 묻자 그는 "첫 발을 내딛었다고 보면 된다. 아직 3주차 밖에 안 됐다"고 답했다.
임창용은 1월 말 애리조나에 들어왔다. 곧바로 집을 구해 훈련을 시작했고, 어느새 3주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임창용은 오전 7시쯤 일어나 30분 뒤 집을 나선다.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호호캄 볼파크에 도착하면 곧바로 찜질을 시작하면서 그날 준비된 재활프로그램을 소화한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치료와 샤워를 마치면 오후 2시 가까이 된다.
짧고 굵은 훈련이다. 이른바 '메이저리그식'이다. 임창용은 "워밍업을 오전 9시에 하는데 고작 5분 밖에 안 해서 깜짝 놀랐다. 미국 스타일이라 그런지 너무 짧다"며 "20살 짜리 선수들은 그걸 하고 곧바로 캐치볼에 들어가도 괜찮을 지 모르지만, 난 우리 나이로 38살 아닌가. 똑같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30분 먼저 나와 개인 트레이너와 먼저 몸을 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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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시카고 컵스는 아직 마이너리거인 그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 계약 시부터 한국인 통역과 개인 트레이너를 채용할 수 있게 해주는 등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임창용과 맺은 '1+1' 계약 역시 실전등판이 가능한 시즌 후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본게임은 역시 내년 시즌이다.
임창용과 그의 에이전트 박유현씨가 새 소속팀으로 컵스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가 나뉘어진 스플릿 계약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좋았고 임창용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지난해 말, 소속팀을 잃은 임창용에 대해 메이저리그 4~5개 팀이 관심을 보인 걸로 알려져있다.
임창용은 동갑내기 통역 김태형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집 안에 웨이트트레이닝장과 수영장이 딸려 있어 하루 종일 운동이 가능하다. 오후 2시 퇴근 후엔 별로 할 게 없어 한국드라마를 보거나 낮잠을 자고, 저녁엔 집에서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하루를 마친다.
고독한 타지생활이지만, 외로움은 덜하다. 그는 "기대도 안했는데 통역을 해주는 친구가 요리를 잘 한다. 영양사 자격증까지 있을 정도다. 난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개인 트레이너 역시 그에겐 큰 힘이다. 일본에서 인연을 맺은 후리타씨가 임창용의 재활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 수술 이후 계속 임창용의 곁을 지키고 있다. 팀 프로그램에 따라 재활이 진행되는데 재활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함께 속도조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재활조의 투수코치는 임창용이 캐치볼을 할 때마다 비디오 자료를 수집한다. 이날 역시 컵스의 트레이너가 임창용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단에선 일본에서 한창 좋았을 때의 비디오와 비교해가면서 임창용을 직접 관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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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페이스라면 더 빨리 복귀가 가능하겠지만, 임창용은 서두르지 않겠단 입장이다. 7월이나 8월쯤 실전피칭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전피칭이 가능할 때, 팬들은 곧장 임창용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볼 수 있다. 컵스와 입단계약을 맺을 때, 메이저리그에서 데뷔전을 갖는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는 구단 측이 먼저 꺼낸 옵션이다. 컵스에서는 협상 시 "마이너리그에서 등판할 정도면 곧바로 경기에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1경기라도 빨리 데뷔시키고 싶다"며 임창용의 마음을 붙잡았다.
구단이 얼마나 임창용에게 거는 기대가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임창용과 함께 뛰던 후지카와 규지(전 한신)를 현 마무리 카를로스 마몰의 대체자로 점찍은 컵스는 임창용도 함께 경쟁하길 바라고 있다.
임창용은 후지카와와 올스타전 때 만나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하는 등 친분이 있다. 후지카와와의 경쟁에 대한 말을 꺼내자 그는 "운이 좀 따라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통산 296세이브(한국 168세이브, 일본 128세이브)를 올린 그가 '운'을 말하다니, 다소 의외였다.
그는 지난 2008년을 추억했다. 2005년 가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삼성에서 임의탈퇴를 불사하고 일본 진출을 강행했다. 2년간 연봉 1500만엔(약 1억7000만원)의 '헐값'이었다.
보직은 그냥 중간계투였다. 하지만 팀의 마무리였던 이가라시 료타가 허벅지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뒤 마무리 보직을 꿰찼다. 그리고 그는 야쿠르트의 '수호신'이 됐다. "그런 기회가 언제나 오는 건 아니잖아요. 정말 운이 따라야할 것 같아요." 물론 그만한 준비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전제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긴장될 것 같다며 설레는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올해는 사실상 테스트"라고 했다. 빅리그에 올라가도 정말 잘 해야만, 2014시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야구를 즐기기 위해 '쿨하게' 도전하고 있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임창용은 조심스레 "마무리"란 단어를 꺼냈다.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까지는 고작 4세이브가 남았을 뿐이다.
"초구는 무조건 직구로 던질 겁니다." 인터뷰 말미 임창용이 자신있게 던진 한 마디. 피해가지 않고 직접 부딪히는 그의 야구인생처럼, 임창용은 메이저리그 첫 공으로 직구를 선택했다.
메사(미국 애리조나주)=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