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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4번 타자는 누구나 홈런을 많이 때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다. 나도 잠깐이었지만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4번을 쳤을 때 한방을 쳐주어야 한다는 심적 압박을 달고 살았다. 요즘 후배 4번 타자 최형우(삼성)를 보면서 선수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최형우는 지금까지 삼성이 치른 12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아직 홈런이 없다. 시즌 타율은 2할이 채 안 된다. 1할7푼8리다. 타점은 3개를 올렸다. 이 기록만 보면 지난해 홈런왕(30개)과 타점왕(118점)을 차지했던 그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긴 것 처럼 비칠 수 있다.
나는 이번 시즌 최형우의 모든 타석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미 정상에 선 본 최형우의 타격 매커니즘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배트 스피드가 약간 떨어져 있긴 하다. 변화구에 자꾸 헛스윙을 하다보니 히팅포인트를 너무 앞에서 잡으려고 하는 경향이 보인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다. 최형우라면 좀더 기다렸다가 충분히 공을 보고 몸에 붙여서 때려도 충분히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야구란 게 묘하다. 아무리 능력있는 타자라도 안 맞을 때는 타석에 들어섰을 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다보면 생각과 다르게 몸이 움직일 때가 많다. 정상적인 타격이 될 수 없다.
이럴 때 의식적으로 야구를 머릿 속에서 끄집어 낼 필요가 있다. 야구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최형우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내는 게 최우선 과제다. 지난해 삼성에 없었던 이승엽이 이번 시즌부터 최형우 앞에서 3번을 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승엽은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최형우는 그렇지 않다. 본인은 부담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몸이 그렇지 않아 보인다.
류중일 감독은 최형우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이승엽이 와도 삼성의 4번은 최형우라고 했다.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부진에도 불구하고 타순에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다른 선수들은 다 바꿔도 최형우에겐 더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다. 류 감독의 선택을 존중한다. 결국 최형우가 스스로 4번의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나는 4번을 치다 6번으로 옮긴 적이 있다. 두 칸 뒤로 갔을 뿐이었지만 심적 압박이 훨씬 덜했다. 상대 투수도 4번일 때 나에게 던졌던 공과 6번일 때가 달랐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최형우가 5번이나 6번으로 타순을 옮겨보면 어떨까.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훨씬 마음 편하게 방망이를 휘두르게 될 것이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