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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훈련'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게 표현됐던 SK의 스프링캠프. 하지만 이제 '지옥'이라는 단어를 '자율'로 바꿔야 할 듯 하다. '자율야구'를 주창하는 이만수 감독이 이끄는 첫 전지훈련인 만큼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과 비교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SK의 전지훈련이 펼쳐지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구시카와 구장을 찾았다. '악명(?) 높았던'김성근 감독 시절의 캠프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직접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기자가 SK 훈련장을 찾은 23일 훈련 스케줄을 보자. 8시 40분 미팅을 시작으로 훈련이 시작된다. 놀라운건 훈련 종료 시간이다. 늦어도 낮 12시에 공식 훈련이 모두 종료된다. 야수들의 경우 배팅, 수비, 웨이트트레이닝을 모두 소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후 스케줄은 철저히 자율이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복귀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훈련을 하면 된다. 물론 휴식을 취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또 하나 차이가 있는 것은 휴식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 시절 3일 훈련을 강도 높게 실시하고 하루 휴식을 취했던 것과 비교된다. 투수 정우람은 "아무래도 몸이 적응이 돼서 그런지 중간중간 휴식이 있는게 좋았지만 지금은 이 스케줄에도 잘 적응했다"고 밝혔다.
훈련장에서 만난 이만수 감독은 이와 같은 훈련 스케줄에 대해 "처음에는 선수들이 신기해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5일 쯤 지나자 금세 적응했다.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을 선수들 스스로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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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옆에 위치한 육상경기장에 워밍업을 마친 투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힘든 러닝 훈련을 앞둔 시간.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육상경기장으로 오는 길에 선수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여유롭게 이동을 했다. 더욱 인상깊었던 장면도 있었다. 김태훈, 박종훈 등 젊은 투수들이 훈련을 기다리며 고참, 용병 선수들과 한데 어울려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아카펠라 화음을 내며 노래를 불렀고 훈련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물론 훈련이 시작된 뒤에는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다. 이를 지켜본 SK의 한 관계자는 "전임 감독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이라고 귀띔했다.
전체적으로 훈련장에 활력이 넘쳤다. 선수들의 표정도 밝고, 여유가 있었다. 선수들도 그런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정근우와 정우람은 "훈련장 분위기가 확실히 밝아졌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선수들이 훈련이 너무 고되 웃을 힘도, 말할 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스프링캠프 첫 훈련에서 선수들이 훈련 시간이 짧아져서인지 소리도 지르고 신나게 하더라"며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앞으로도 오늘처럼 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신이 나야 야구도 잘된다"며 흡족해했다.
이미 이 감독은 이런 '자율훈련'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SK는 22일 오키나와 나고구장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2대1로 승리를 거뒀다. 이 감독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확실히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기를 하는데 선수들이 신이 나 있더라"며 "시즌 첫 실전이었는데도 이런 모습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오키나와(일본)=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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