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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로페즈는 KIA 용병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꼼수'와의 결별
오프시즌, 기존 용병은 '계약하자니 조금 모자라고, 버리기는 아까운' 그야말로 '계륵'같은 경우가 많다. 상대 성적이 중요한 프로스포츠에서 경쟁팀 전력강화를 막는 소극적 방법 또한 전략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형태의 꼼수가 등장한다. 대표적 꼼수가 바로 기존 용병을 임의탈퇴로 5년간 묶는 방법이다. 황당하게 적은 연봉을 불러 선수가 거절하도록 하면 된다. 타 팀으로 이적해 깜짝 활약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사실 용병 제도 도입 이후 각 팀들은 이러한 편법을 공공연하게 사용해왔다.
윈터리그의 참가
2009년 화려한 시즌을 보낸 로페즈는 그 해 겨울 자국인 도미니칸리그에 참가했다. 이듬해인 2010년 그는 4승10패로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타선과 불펜 지원 불발이란 외적 요소가 그의 발목을 잡은 측면도 있지만 어찌됐건 4.66의 방어율은 2009년 로페즈답지 않은 수치였다.
KIA는 로페즈의 부진 원인 중 하나를 휴식 부족에서 찾았다. 2009년 무려 190⅓이닝을 소화했던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2010년 시즌을 교훈 삼아 KIA는 윈-윈의 방안을 모색했다. 계약 조건 중 하나로 '윈터리그 불참가' 조항을 마련했다. 약속대로 로페즈는 윈터리그에 참가하지 않은채 곧바로 KIA 캠프에 합류했다.
KIA의 분석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전반기까지 로페즈는 승승장구했다. 전반기까지 18경기에서 10승3패 1세이브, 방어율 3.03으로 맹활약했다. 탈삼진 81개를 솎아내는 동안 볼넷은 단 17개만 허용했다. 삼진/볼넷 비율이 4.76에 달할 정도로 대단한 구위와 제구력을 뽐냈다. 하지만 그에게 옆구리 통증이 찾아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은 로페즈에게 시련을 안겼다. 후반기 로페즈는 8경기에서 딱 1승만을 추가했다. 선발승은 단 1승도 없었다. 6패를 당했고 방어율은 무려 7.27이었다.
시즌을 마친 로페즈는 한국을 떠나면서 정든 KIA와의 결별을 직감했다. 구단측에 "만약 도미니카에서 새 용병투수를 구한다면 현지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쿨한 말까지 남기고 떠났다. KIA로부터 재계약 약속을 받지 못한 그는 올겨울 부담 없이 멕시칸리그에서 뛰었다. 한 때 로페즈를 '보험용 카드'로 염두에 뒀던 KIA의 미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로페즈는 1975년생, 한국나이로 서른 여덟이다. 게다가 그는 완급조절형 투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투구를 한다. 인간인 이상 무쇠팔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을 KIA는 끝내 떨치지 못했다.
선동열 감독의 선택
선동열 신임 감독은 구단에 '수준급 좌완용병 2명'을 공식 요청했다. 로페즈와의 계약을 포기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하지만 많은 노력에도 불구, 주문에 꼭 맞는 실력파 좌완 용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적어도 1명 정도는 실력있는 오른손 투수로 전환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로페즈는 왜 후보에서 제외된 것일까. '수준급'에 대한 KIA의 기준, 조금 더 세부적으로 선동열 감독의 엄격한 기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로페즈는 선동열 감독이 원하는 확실한 투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난 셈이다. 컨트롤이 뛰어나지만 구위에 대한 확신은 미지수다. 지난 시즌 로페즈는 직구라 불리는 포심 패스트볼을 거의 던지지 않았다. 빠른 공의 절대 비율은 싱커였다. 투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직구를 버렸다는 사실은 구위에 대한 자신감과 직결되는 요소다.
3년 장수 용병 투수 로페즈를 포기한 KIA.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어찌됐건 로페즈보다 나은 용병 투수를 영입하겠다는 KIA의 의지와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어찌됐건 올시즌 SK 유니폼을 입고 뛸 로페즈의 활약 여부에 KIA 시선이 쏠리게 됐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