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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걸렸다. 오릭스 이승엽이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과의 무언의 약속을 지키며 그를 활짝 웃게 만들었다.
오카다 감독은 과거 한신에서 사령탑을 역임했다. 연간 관중수에서 요미우리를 넘어설 만큼 인기 있는 한신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오카다 감독은 끝내 요미우리란 벽에 부딪혀 사퇴했었다. 당시 이승엽이 요미우리 소속이었다.
2006년 이승엽은 8월1일 한신과의 도쿄돔 경기에서 이가와 게이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다. 그때 반대편 덕아웃의 오카다 감독은 속이 쓰렸을 것이다.
이승엽에 대한 오카다 감독의 강렬했던 기억은 5년이 지나도 남아있었다. 지난 2월 오릭스 전훈캠프에 참가한 이승엽은 오카다 감독과 따로 식사를 했던 사연을 소개했다.
이승엽은 당시 "감독님이 내가 (요미우리 시절) 한신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을 때 얘기를 했다. 홈런 치기 직전에 슬라이더 하나가 들어왔었다. 볼이 선언됐다. 오카다 감독님은 그걸 기억하시고 '그때 슬라이더는 낮은 쪽 스트라이크 아니었냐'면서 웃으셨다"고 밝혔다. 그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면 홈런은 없었을 거라는 오카다 감독의 조크였다.
오카다 감독이 본인에게 뼈아팠던 홈런 순간을 굳이 언급한 건, 사석에서 첫 대면하는 이승엽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때와 같은 활약을 오릭스에서 해줄 것을 이승엽에게 당부한 셈이다.
14일의 홈런은 바로 이같은 사연 덕분에 오카다 감독에게 더욱 큰 기쁨이 됐을 것이다. 1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카다 감독은 경기 직후 "이 홈런은 크다"라고 말했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릭스는 소중한 1승 덕분에 같은 날 승수를 추가한 지바 롯데와의 1게임차 거리를 유지하며 퍼시픽리그 3위를 지켰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