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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오승환이 7년전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을 지 모른다.
수술, 그것도 국내에서
2001년 단국대 1학년 재학중에 오승환은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훗날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이 오승환을 외면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게다가 오승환은 그 유명한 미국 LA의 조브클리닉도 아닌, 국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 와중에 삼성은 2004년 여름에 열린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오승환을 2차 1라운드로 지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승환은 대학 3학년인 2003년 가을부터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공을 던진다는 걸 확인한 삼성 관계자가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단 내부에서도 '긴가민가' 분위기였다고 한다.
운명을 결정지은 간이 테스트
당시 프로야구에는 연고지역 선수를 우선으로 뽑는 1차지명 제도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구-경북 지역은 우수선수들이 많지 않았다. 어찌보면, 삼성 입장에선 전년도 성적 역순에 따라 뽑을 수 있는 2차 1라운드 지명권이 더 중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2차 1라운드 지명권을 팔꿈치 수술 경력의 투수에게 쓴다고?' 삼성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때였다. 당시 삼성 트레이너가 의견을 냈다. "수술 경력이 있어도 오른팔을 구부려 오른 어깨에 손이 닿으면 괜찮다. 그러면 던질 수 있다."
또다른 관계자가 급히 파견됐다. 당시 단국대와 서울 구단의 연습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모처였다. 남들 시선을 피해 야구장 밖에서 간이 테스트를 실시했다. "승환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해보자. 오른쪽 팔 구부려서 오른 어깨에 손을 대봐라."
이번엔 오승환의 기억. 오승환은 "그때 그런 테스트를 받았다. 손이 쉽게 닿았다. 왜 그걸 하는지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OK. 삼성은 그해 드래프트에서 오승환을 2차 1라운드로 지명했다. 1라운드 전체 순번에선 5번째였다. 삼성의 전년도 종합순위가 4위였기 때문. 이후 오승환은 추계리그에서 펄펄 날았다. 타구단들이 땅을 쳤다.
만약 삼성도 지명하지 않았다면
그때 오승환의 오른손이 어깨에 닿지 않았다면? 팔이 굽어있는 프로야구 투수들이 많다. 손이 어깨에 안 닿는 사례로 이어진다. 부상이나 수술 후유증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속구를 던지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투수의 던지는 팔은 포크레인의 움직임과 비슷하다. 어깨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관절이 움직여 마지막 순간 공을 챈다. 그중 한 관절이 꺾여 고정돼있으면 당연히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다.
그랬다면 삼성이 지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부담 가는 선택이었다. 그때 분위기로 봤을 때 1라운드는 그냥 통과됐을 것이다. 2차 2라운드에서 타구단에 뽑혔을 수 있고, 혹은 5,6라운드까지 밀렸을 수도 있다. 심지어 끝내 지명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두산 김현수가 그랬듯이 말이다.
모든 선택에는 가중치가 뒤따른다. 2차 1라운드로 지명받는 선수는 초기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삼성은 오승환을 중용했고, 그는 첫시즌 중반부터 주전 마무리투수가 됐다. 삼성은 이미 불펜 최적화가 진행중인 팀이었다. 스스로 밝혔듯, 삼성은 오승환이 뛰기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다.
오승환 "나는 그저 야구만 했다"
오승환과 뒤를 이은 몇차례 사례 덕분에 그 국내 병원은, 이제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 대신 국내 수술을 택하는 선수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질문했다. "삼성의 지명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오승환은 "사실 그 시기의 선수들은 어떤 팀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지명받느냐 못 받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질문을 바꿨다. "'끝내 지명을 못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었는가." 오승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었다. 지명에 대한 걱정 보다는 그냥 훈련만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당시 참 바보같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훈련만 했다."
수술 이듬해인 2002년, 오승환은 재활센터 일정을 마치고 단국대 숙소로 돌아가다가 주택가의 함성을 듣고서야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몰입하는 스타일. 드래프트 걱정 보다 그저 묵묵하게 훈련했을 뿐이다.
오승환의 인생과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바꿔놓은 몇 가지 우연적인 요소는 분명 있다. 하지만 모든 우연을 관통해 흐르는 단 하나의 필연이 있다. 오승환은 매순간 노력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