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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잘 나갈수록 조심해야한다는 말은 영광 뒤에 붙는 비꼼과 위험요소 때문이다. 가장 높은 곳에 섰던 이들의 급전직하를 우리는 자주 목격해왔다. 잘 나갈 때의 안하무인 사고방식, 연이은 환호에 도취된 독선과 아집. 결국 작은 잘못들을 과감하게 무시하다 큰 잘못에도 브레이크 시스템이 고장난다.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프로야구라고 별반 다를까. 프로야구는 오히려 더 취약하다. 대중의 인기가 주식이다. 지난 10년전만 해도 프로야구는 암흑기였다. 관중은 200만, 300만대를 오갔다. 2016년 프로야구 콘텐츠가 그때에 비해 두배, 세배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다. WBC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촉진된 광풍처럼 몰아친 프로야구 붐. 불었던 바람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다. 뒷바람의 힘으로 달릴 때 힘을 비축해 앞바람이 불때도 전진해야 하는데 한국프로야구는 대중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싶은 걸까. 사랑엔 책임이 따른다. 주든, 받든. 한국프로야구는 20일 터진 두가지 대형 악재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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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와 각구단은 수년전부터 승부조작을 예의주시해 왔다. 4년전 아픔도 있었고, 타 종목에서 계속 터지는 승부조작이 프로야구라고 해서 안전지대일 리 없다. 교육과 강력한 징계, 이 두가지 방패만으론 역부족인 듯 하다. 이제는 선수들이 자정노력에 나서야 한다.
선수들은 지금까지 프로야구의 성장 열매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연봉은 수배, 수십배 뛰었다. 15년전 한화 송지만은 BMW 3시리즈 차를 산뒤 대전야구장 주차장에서 연신 차를 닦곤 했다. 그때는 5천만원 남짓하던 그 차가 선수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벤츠 마이바흐, 페라리, 포르쉐,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는 선수도 있다. 승용차가 가치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선수들의 일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얘기다. 80억원대 FA선수들이 뒷돈으로 100억원 가까이 받았다는 것은 야구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기력은 늘 제자리걸음인데 몸값만 치솟고, 여기에다 잊을만하면 사건사고를 터뜨리고. 급기야 프로스포츠의 근간인 공정한 승부에까지 흠집을 냈다. 이는 혹독한 겨울을 재촉하는 행위다. 프로야구의 몰락이 오면 가장 후회할 이들은 선수들이다. 팬들은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면 되고, 다른 스포츠를 좋아해도 되고, 심지어 스포츠 취미를 끊어도 생업에 전혀 지장이 없다. 선수들은 다르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인을 요구하는 '귀찮은' 팬들과 야구장의 '성가신' 함성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왜 이같이 바보같은 행위를 멈추지 않는가. 잘못된 유혹은 시작단계부터 끊어야 한다.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브로커의 말은 거짓이다. 발각되면 영원히 낙인이 찍히고, 그렇지 않다해도 수천만원이 인생을 노예처럼 황폐화시킬 것이다. 울며 후회해도 그때는 늦다.
냉정하게 말해 승부조작 사건은 또 터질 수 있다. 어쩌면 프로야구에 풍토병처럼 이미 깊숙히 스며들었다고 봐야 한다. 수법은 교묘해지고, 주고받는 돈의 액수도 커졌다.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조금이라도 동정의 시선을 줘선 안된다. 선수들이 제일 중요하다. 동료애는 불법도박, 승부조작같은 단어와는 양립될 수 없다. 지금 이순간 누구보다 참담한 심정을 가져야 하는 이는 KBO, 구단관계자도, 팬들도 아니다. 선수들 본인들이다.
조만간 나올 선수협의 사과 성명서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공유해야 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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