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이종범은 선동열을 배워라
기사입력 1998년 01월 07일 13시 53분
앵커우먼 바버라 월터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꼭 한번 만나기를 간청한 열성적인 팬에게 바버라 월터스는 만날 약속을 한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장소와 시간 등을 정하고 대충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그 `열성적인 팬'이 앵커우먼 `바버라 월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알아보죠. 바버라 월터스양.'
나도 한동안 기자 생활을 했지만 정말이지 언론이라는 것은 차갑고 냉정하다.
그리고 잔인하다.
어떤점에서 매스컴은 스타들을 쓸만큼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데도 버린다.
왜냐하면 싫증났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나 연예계 스타를 보여주는 매스컴 뿐 아니라 이른바 `팬'들 역시 잔인하다.
자신이 만든 허상에만 집착하지 그 진짜 얼굴을, 본래의 가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스포츠신문에 아무개 선수 어쩌구 하는 큼지막한 기사가 난다.
대개는 선수들에게는 너그러운 스포츠신문이라서 그 선수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이종범의 일본행이라든가 다른 선수들의 아주 성공적인 협상에 의한 외국행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번에 이종범을 일본에 보내면서 각 매스컴의 기대와 찬사를 보면 선동열을 보낼 때보다 더하다.
선수생활의 멋진 마무리를 위해 일본행을 한 선동열보다 이종범은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한 최전성기에 일본에 간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종범은 모든 것을 선동열에게 배우고 그를 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깊이 감사해야 한다.
일단 매스컴에 대해 의연한 점이다.
선동열은 매스컴과 변덕스런 팬들과의 전쟁에서 싸워 이겼다.
일본에 가서 기대와 달리 부진을 면치 못할 때 신문들은 선동열은 이제 끝났다고 썼고 팬들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선동열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올 수 있다는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살아남았고 훌륭하게 재기했다.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오기를 갖고 자기의 발판을 구축한 선동열의 프로정신을 일단 이종범은 배우고 따라해야 한다.
선동열은 일본 야구계에 이른바 상표는 일제 상표를 달고 품값만 받고 수출되었던 OEM선수가 아니다.
그는 당당히 Made in Korea 라는 원산지 증명을 달고서 활약한 첫 번째 선수였다.
바로 그 선동열이 이제 이종범이라는 또다른 품질 보증된 Made in Korea 를 있게 했다.
이종범이 그처럼 훌륭한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동열이라는 제품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팬들은 변덕스럽고 잔인하다.
그러나 그 사랑없이 스포츠선수는 살아갈 수 없다.
바로 두 연인과 애증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스포츠선수의 타고난 운명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훈련'과 `정신력'이 바탕이 된 `실력'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