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상생체육]혁신은 일반학생의 체육시간에서 시작된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5-13 06:00



'운동장 없는' 초등학교 체육수업 사례연구.

지난해 8월 서울교대 교육전문대학원 이재환 교사가 쓴 석사 논문 제목이다. 스포츠로 모두가 행복한 '스포츠 선진국'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운동장 없는' 초등학교 체육수업을 연구해야 하는 것, 대한민국 학교체육의 쓰라린 현실이다.

'노는 게 제일 좋은'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몫이다. 도심 아파트 단지 아이들의 운동장이 사라진 것은 경제논리, 개발논리 때문이다. 2001년 학교 건립 경비 절감을 위해 운동장 없는 도심형 학교 설립에 관한 논의가 구체화됐고, 2007년부터 설립이 허용됐다. 그 결과 2010년 경기도 각급 학교 중 운동장이 없거나 운동장 규정에 미달하는 학교가 1946곳, 전체 학교의 34.6%에 달하게 됐다. 지난해 11월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2022년까지 도내 모든 학교에 실내체육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체육관이 없는 704개교 중 136개교에 3400억원을 들여 실내체육관을 우선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지난 3일 경기도가 내놓은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엔 학교실내체육관 건립 예산 1190억원 중 372억원만이 반영됐다. 또다시 난항이다. '체육이 복지'라면서 체육 예산은 빨리 없어지고, 새로 만들고자 하면 자주 다른 현안에 밀린다.

서울 시내 초중고교도 현실은 비슷하다. 100m 달리기가 가능한 운동장을 갖추고 있는 학교는 절대 부족하다. 2017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동장 면적이 '0'인 학교가 50개, 서울시내에 운동장이 없는 학교는 22개로 집계돼 있다. 2018년 교육부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초등학생 1인당 체육장 면적은 15.8㎡, 중학생은 15.9㎡, 일반고는 12.0㎡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생존수영'이 학교체육의 화두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지난해 초등학교 3~4학년 대상이었던 생존수영을 2020년까지 전학년으로 확대한다. 문제는 수영장 인프라다. 서울시내에 수영장을 보유한 학교는 전체 604곳 중 37곳에 불과하다. 지방의 경우는 더하다. 일본의 경우 전체 초등학교의 82.3%가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교육부가 내놓은 생존수영 수업시간은 연간 10시간, 영법은 커녕 뜨기, 호흡법, 발차기만 배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게 '눈가리고 아웅'이다. 운동장도, 체육관도, 수영장도 제대로 없는 학교에서 '신나는 학교체육'을 노래할 수 있을까.

2018년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 결과 한달 기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10대의 비율은 32.9%로 70세 이상(34.4%)을 빼고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연도별 '주 1회 이상''주2회 이상' 체육활동 참여율은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했다. 전연령층의 스포츠는 늘었지만 10대 청소년의 운동만큼은 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 시행 이후 학교체육을 경시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체육 정상화를 목표삼았지만 현장의 변화는 더디다. 축구공, 피구공만 던져주는 '아나, 공', 시험을 앞두고 체육시간에 국영수를 자습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그나마 학교체육을 이만큼 바꿔온 것은 체육교사와 학교장의 열정이다. 어떤 학교를 가고, 어떤 '쌤'를 만나는가가 학창시절 체육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이 어떤 학교를 가든 일정 수준 이상의 체육시간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환경과 정책이 절실하다.


스포츠혁신위원회 시ㆍ도장학사 간담회<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7일 체육계 미투 사건 이후 '스포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첫 권고를 했다. 5월 중 학교체육 정상화를 주제로, 두 번째 권고를 준비중이다. 현장에선 학생선수의 학습권, 체육특기생 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스포츠'라는 시각에서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보통 학생들의 체육시간'이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야말로 '스포츠 인권'이다. 학생선수의 시작 역시 '보통의 체육시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로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위해 문체부뿐 아니라 교육부, 기획재정부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 스포츠와 체육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문제는 교육부의 의지, 대한민국 교육 당국이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부 내 체육 행정은 오히려 위축된 모양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문교부 시절에도 교화국 내에 체육과가 존재했다. 1961년 문교부 체육국 학교체육과가 신설됐다. 5공화국 시절인 1982년 학교체육업무가 체육부로 이관된 후 체육부 체육진흥국 내 학교체육과가 존재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부터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학교체육을 위해 협력하는 구도가 됐고. 교육부 내 보건체육과, 학교시설환경과, 학교정책과, 체육보건급식과, 학생건강안전과에서 체육을 담당했다. 2012년 '체육'예술교육과, 2013년 인성'체육'예술교육과가 체육교육을 전담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일해왔다. 새 정부 들어 교육부 내 직제에 '체육'이라는 두 글자가 사라졌다. '인성체육예술교육과'에서 '민주시민양성과'라는 이름하에 대한민국 체육 교육을 전담하는 공무원 수는 여전히 3~4명 선을 맴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2월 제2차 학교체육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다양한 체육활동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시도 교육청은 물론 문체부, 대한체육회 등 관계기관과 지속적인 소통과 협업을 통해 실제 학교에서 체감할 수 있는 학교체육 진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랜 숙원이던 '학교체육 거버넌스' 학교체육진흥회가 출범하고,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체육개혁의 골든타임'을 주창하고, 교육부는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체육수업 내실화', 문체부는 '신나는 스포츠: 모든 학생이 공부하고 운동하는 스포츠 문화'를 비전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체육 교육의 현실은 여전히 빈곤하다. 정책은 말이 아닌 실천이다. 국민은 체육 예산, 학교 운동장과 수영장의 수, 체육 전담 공무원 수, 체육시수 등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학교체육과 스포츠에 대한 진정성을 판단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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