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근대 복싱의 발상지로 꼽히는데 제임스 피그가 1718년 런던에서 복싱아카데미를 개설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한국은 1929년 9월 성의경 선생에 의해 조선권투구락부가 창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프로복싱은 65년 12월 서강일에 의해 첫 포문이 열린 이후 43명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했고, 아마복싱은 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수안 선생에 의해 첫 정상 도전이 시작된 이래 3대 메이저대회(월드컵,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7명의 선수권자가 탄생한 복싱 강국이었다. 하지만 아마복싱계에선 2005년 세계선수권 이옥성의 금메달 이후, 프로복싱계(남자)에선 2006년 지인진의 WBA 페더급 챔피언 등극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의 월드 챔피언도 배출하지 못하고 동반 침체에 빠져 있는 게 한국복싱의 현주소이다. 다시 한번 한국 복싱의 부활을 기대하며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복싱 히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 주니어페더급 챔피언이자 동양 1위라는 한직(?)에 머물렀던 전찬중이라는 복서이다. 그는 80년 프로에 진출하여 6년 2개월 동안 35전을 뛰었는데 특이한 점은 단 한 차례의 국제 경기도 없이 국내 최정상급 복서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잡초 복서'였다는 사실이다. 35전을 전부 국내 선수와 치른,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기록은 16전을 연속해서 4회전 경기를 치른 박종배의 기록과 함께 국내 진기록에 꼽힌다. 혹자는 전찬중을 속칭 '듣보잡'이라 폄훼할지 모르겠지만, 양파 껍질 벗기듯이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순도 높은 복서들과의 대결에서 검증된 실력만큼은 챔피언 감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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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중은 구리시 인창동에서 '김민기 복싱클럽'을 운영하는 체육관 후배 김민기 관장의 롤모델이자 아이콘일 정도로 정도를 걷는 복싱인이다. 전찬중의 상원체육관 후배이기도 한 김민기 관장은 서울체고, 한국체대, 대전중구청을 거치면서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두루 거친 엘리트 복서로, 스몰급부터 슈퍼헤비급에 이르기까지 전국선수권에서 9체급을 석권한 전무후무한 복서다. 8체급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파퀴아오(필리핀)에 비견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단한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78회 전국체전에서 슈퍼헤비급으로 출전, 현역 국가대표인 안정현과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채성배, 그리고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백현만까지 차례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주인공이다. 이런 명복서 출신의 김민기도 한때 건설업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뜻하지 않은 암초에 좌초되어 사업이 풍비박산한 후 절망에 젖어 있을 때 자문을 구한 선배가 바로 전찬중이었다. 그리고 전찬중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라."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6년 전 체육관을 차려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문득 서산대사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갈 때는 감히 그 발걸음을 난잡하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날 동행한 전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도 선배 전찬중이 걸어온 길을 음미하면서 많은 산지식을 습득했으리라 생각한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