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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요, 썰매 담당이에요. 매일 장비를 고쳐요. 엄청 섬세하고 꼼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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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이스하키의 썰매는 맞춤형 좌석인 바스켓, 프레임과 양날로 구성된다. 정승환은 이 썰매를 늘 끼고 산다. 끊임없이 점검하고, 교정한다. "절단 장애인이다 보니 좌우 밸런스가 안맞는다. 썰매 세팅에는 드리블 세팅, 스케이팅 세팅이 있는데 각도에 따라 중심이동이 달라진다. 드리블을 주로 할 경기인지, 스케이팅을 주로 할 경기인지 경기전에 미리 맞춰 세팅해놓는다"고 했다. "썰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이다. 엄청 예민하다. 스크래치가 조금만 나도 턴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19년차 베테랑 수비수 한민수의 날은 31㎝ 긴날이다. 한민수는 "날 길이를 보면 성향이 나온다. 수비는 잔기술이나 꺾는 것이 많지 않다. 스케이팅에 유리한 긴 날이 좋다. 공격수들은 민첩하게 움직여야 해서 턴, 순간전환에 유리한 짧은 날이 좋은데 선수마다 선호도가 있다"고 했다. '공격수 정승환의 날은 길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민수는 "승환이는 밸런스가 워낙 좋아서 무슨 날을 써도 잘한다. 아시지 않나"라며 웃었다. 정승환은 "역습을 많이 해야 한다. 수비와 공격을 늘 겸해야 한다. 긴날로 더 빠른 턴을 하기 위해 양날의 폭을 좁혔다"고 설명했다.
4년전 소치패럴림픽, 미국전에서 정승환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세계최고의 공격수인 정승환은 매경기 집중마크 대상이다. 격렬했던 2피리어드, 썰매 프레임 중 발을 놓는 앞부분 '노즈'가 부서졌다. 장비 담당 스태프도 없던 시절, 라커룸에 들어와 나홀로 썰매를 고치다 2피리어드가 끝나버렸다. "썰매 고치느라 2피리어드를 아예 못뛰었다. 그래서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졌다. 다른 선수 걸 빌렸는데 발 각도가 달라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미국전 직후 선수촌내 오토복센터 송창호 차장의 긴급 용접 지원 덕에 가까스로 경기를 이어간 고마운 기억도 털어놨다.
평창패럴림픽은 격세지감이다. 지난해까지 장비 담당도 없이 직접 썰매와 날을 고치던 '맥가이버' 대표선수들은 평창패럴림픽에선 헌신적인 장비 매니저들(백민철, 최영철)의 지원속에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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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은 자신의 분신인 썰매를 애지중지한다. 하늘색 썰매에 '슈팅스타'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영화 '우썰탄'에 부서진 썰매가 나온다. '슈팅스타'가 그 다음 썰매다. 2012년 6월부터 지금까지 타고 있다. 이걸 타면 골을 넣을 것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이 썰매로 4년전 소치도 갔다. 평창까지 함께 왔다"며 애정을 표했다. 2004년 입문 이후 14년간 거친 '애인 썰매'는 총 4개. 모두 부서질 때까지 꿰매고 이어붙이며 탔다. "내 썰매에 대한 애착이 있다. 부서질 때까지 버릴 수 없다"고 했다.
터프한 수비수 한민수는 "나는 10개쯤 되는 것같다. 모두 창고에 잘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개회식 성화주자로 나서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헬맷에 두 딸 소리, 소연의 이름을 새기고 경사로를 뚜벅뚜벅 오른 '딸바보' 아빠는 "나도 썰매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했다. "형님, 소리, 소연? '쏘쏘(SOSO)' 어때요?" '작명의 대가' 정승환의 제안에 한민수가 "야! 그거 진짜 좋다!"며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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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과 한민수의 의족은 '달리기 전용' 의족이다. 오토복 코리아가 지난 9월 후원한 이 의족(약 1800만원)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날개'를 달아줬다.
마흔여덟 캡틴 한민수는 돌 무렵 왼다리를 앓은 후 목발을 짚다, 결국 나이 서른에 수술대에 올랐다. "어릴 때 복싱을 배우고 싶어서 한발로 선 채 20분간 샌드백을 두드린 적이 있다. 달리기는 평생의 로망이었다. 스텝과 달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이걸 신으면 다 되겠더라. 이걸 신으면 다르다. 은퇴 후 몸이 불편해서 못한 운동, 농구, 복싱 다 도전해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달리기 의족이 다리 근력에 도움이 되겠다"고 넘겨짚은 말에 정승환은 "근력, 유산소 다 맞지만, 그냥 달릴 수 있다는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답했다. 다섯살 때 동네 공사장에서 사고로 오른쪽다리를 잃은 후 두 다리로 달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다리로 달리면서 온몸에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사뿐사뿐해지는 기분, 정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숨이 차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스하키와는 다르다"고 했다. "작년 9월 이 의족을 처음 신은 후 매일 적응훈련을 했다. 춘천에 사는데 동네에서 달리면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며 웃었다. "달릴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다. 달릴 수 있으니 자신감도 올라간다. 더 바라지 않는다. 소소한 걸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좋다"며 웃었다.
정승환은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의족에게도 사랑스러운 이름을 선사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로켓맨' 정승환의 의족 이름은 '치타'다.
평창=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