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경북 복싱의 발전을 위해 뛰는 숨은 주먹들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2-19 13:00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2. 안동에서 만난 경북복싱의 견인차들

한 세대를 통상 30년이라 일컫는데 필자가 지도자로 복싱에 입문한 지 올해로 30주년이 됩니다. 나름 매우 뜻깊은 해에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북 복싱인의 밤' 행사에 백낙춘 경북복싱연맹 부회장의 초청을 받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경북 안동' 하니까 지난해 5월 어느날 서울 강동구 모처에서 이 고장 출신 정치인 권정달(82, 육사 15기) 전 민정당 사무총장과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장윤호(59, 한체대 출신) 선배의 소개로 만남이 이뤄져 안동의 역사와 인물 등에 대해 두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안동은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한 도시죠. 1894년 갑오의병의 발상지이자 한국독립운동의 출발점으로, 독립운동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이뤄진 곳입니다. 일송 김동삼, 석주 이상용, 그리고 교과서에 수록된 '청포도'란 시로 유명한 이육사 시인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함은 물론 경술국치 때 가장 많은 순절자가 발생한 고장이죠.

필자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일순 권정달 총장의 얼굴에서 안동출신이란 자긍심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특히 안동은 '정읍현감'이란 한직에 있던 이순신이란 평범한(?) 인물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 무려 6단계 수직상승시켜 일약 전라좌수사에 발탁한 서예 유성룡의 본향이죠.

이순신은 1592년 4월 12일 거북선의 함포사격을 마지막으로 '전술훈련 종료'를 선언했는데 기적적인 것은 그 다음날인 13일 임진왜란이 발생했던 것이죠. 만화책 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일이었죠.


그 후 이순신은 올곧은 성품 때문에 파직과 좌천 그리고 백의종군을 두루 경험했지만 끝까지 그를 이끌어준 유일한 사람이 유성룡이었죠. 이에 이순신은 각종 해전에서 23전 전승을 기록하며 국난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천거한 유성룡의 탁월한 안목에 화답했죠. 이순신 장군을 전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서예 유성룡의 기가막힌 '신의한수'였죠.

참고로 스포츠에선 야구의 최동원이 연세대 재학시절 23연승을 기록했고, 김현치가 프로복싱에서 23연승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경북아마복싱은 88년 서울올림픽 페더급 동메달리스트이자 현재 경북연맹 전무이사인 이재혁(50, 안동, 한국체대)을 비롯해 국내 복싱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2회 연속 메달리스트이자 2014년 부산아시안게임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인 신종훈(29, 구미, 서울시청), 전국체전 9연패의 대업과 올림픽 2회 연속 출전에 이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 리스트인 김기석(39, 서울시청), 89년 서울컵 우승과 '최우수복서' 선정에 이어 91년 제6회 호주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로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페더급에 출전했던 박덕규(46, 예천, 원광대), 그리고 89년 아시아선수권과 90년 인도네시아대통령배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세종(구미, 상무), 90년 킹스컵과 인도네시아대통령배 미들급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보안(안동, 상무)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복서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복싱의 메카였죠. 또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IBF 미니멈급) 출신 이경연(53, 봉화) 역시 이 고장에서 탄생한 자랑스런 복서죠.


◇이명범 경북복싱연맹 회장(왼쪽)과 임창용 전 경북 심판장. <사진제공=조영섭>


현재 경북 아마복싱은 이명범 회장(64), 백낙춘 부회장(60), 이재혁 전무, 곽귀근 교사 등 실무진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것이 최대의 강점입니다. 복싱계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곽귀근 경북체고 교사는 배효조, 신종훈, 김기석, 이광중, 유지윤. 최진우 등 걸출한 선수들을 쉼없이 배출한 복싱계의 명장이죠. 또한 얼마전까지 경북심판장을 엮임했던 임창용 심판(57, 동아대)이 공명정대한 포청천으로 군림하며 경북 복싱을 한단계 성장시켰다고 이명범 회장과 백낙춘 부회장은 이구동성으로 회고하더군요.


◇곽귀근 경북체고 교사(왼쪽)와 백낙춘 경북복싱연맹 부회장. <사진제공=조영섭>

◇경북을 대표하는 명복서 출신 김기석 동양대 감독(왼쪽)과 이재혁 경북복싱연맹 전무. <사진제공=조영섭>


이명범 회장은 전남 영산포 출신으로 사업하는 부친을 따라 70년 경북에 정착함으로써 이 고장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71년 중앙심판위원인 김해동씨가 운영하는 대구국일체육관에 입관한 지 2년 만에 당대 간판복서인 박태국, 강희용 등과 함께 경북대표로 전국체전과 대통령배에 출전했으며, 특히 76년 제6회 대통령배 웰터급 준결승에서 전남대표 황충재(60, 광양)와 치열한 타격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는 등 호쾌한 복싱을 펼쳤던 전형적인 슬러거였죠.

이 회장은 은퇴 후 건설업에 투신하면서 92년부터 2002년까지 경북복싱연맹 부회장을 엮임한 후 회장에 취임한 200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경북복싱의 발전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온 경기인 출신 회장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그분과의 짧은 대화속에서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한 구절 한 구절에 진정성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치른 아들 결혼식에서 평소 호형호제하던 가수 남진이 주례를 볼 정도로 폭넓은 인간관계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죠.

실무 부회장인 백낙춘 전무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주세봉이 세운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이 있는 풍기 출신으로 경주상고 1학년 때인 74년 복싱에 입문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길만 걸어온 전형적인 복싱인이죠. 현역 시절 크게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고교 졸업 후 인하공대에 다니던 형님이 있는 인천을 오가다 인천과 인연이 되어 80년 인천 현대체육관 수석사범과 대헌공고 코치 등 한직에 있으면서 지도자 생활의 경험을 쌓은 후 82년 낙향하여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풍기에서 경학복싱체육관을 차렸습니다.


◇전 IBF 미니플라이급 챔프 이경연(왼쪽)과 백낙춘 경북복싱연맹 부회장. <사진제공=조영섭>


후에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이경연(영주공고)을 비롯, 송인혁 등 정상급 복서들을 발탁, 조련한 후 이듬해 경북복싱연맹 코치를 시작으로 전임코치 및 전무를 거쳐 현재 영주시청 감독 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광중, 권기덕, 김기석, 김춘식, 이상민, 이도재, 김주성, 이경렬 등 정상급 복서들을 화수분처럼 쉼없이 배출하며 명성을 쌓았죠. 이후 대한아마복싱 심판과 전무, 그리고 세계복싱연맹(AIBA)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경북 최고 체육상'과 '영주시민대상'을 받은 경북을 빛낸 자랑스런 복싱인 중 한 분으로, 특히 주변 복싱인들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로 평판이 좋은 복싱인이죠.

특히 다음달 영주시에 준공 예정인 '대한복싱전용훈련장'은 물경 100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성사됐는데 이는 장윤석 의원을 비롯한 모든 경북복싱인이 대동단결하여 이뤄낸 금자탑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에는 복싱 경기는 물론 각종 전지훈련 등을 병행할 수 있는 숙박시설 등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잡혀 있어 지역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하면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영주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얼마전 신호등과 도살장이 없는 특이한 국가 부탄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다 최근 귀국한 정창구씨(58, 경주)도 이후 경북복싱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부탄이란 국가는 왕정국가로, 수년 전 윌스트리트저널을 통해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나라죠. GMP는 불과 1400달러에 불과하지만 계급제도가 없고 빈부격차가 아주 적답니다. 10억 원짜리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은 없지만, 밥 굶는 사람이나 노숙자도 없고,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니 불만이 적으며, 외국인 관광객마저 연간 4000명으로 제한할 만큼 외부와 담을 쌓고 지내는 남한 절반 크기의 특이한 나라죠. 행복의 걸림돌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원초적으로 발생된다는 것을 숙지한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정창구 전 부탄 복싱대표팀 감독(왼쪽)과 임창용 전 경북 심판장. <사진제공=조영섭>


아무튼 이런 복싱 볼모지 부탄에서 2년여 동안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정창구는 현역시절인 79년 전국학생선수권 플라이급 준결승에서 현란한 테크닉으로 문성길(당시 목포 덕인고)의 파워복싱을 원천봉쇄하며 승리를 거둔 복서였죠. 정창구는 대구성서공고 코치 시절인 97년 연맹회장배에서 박창환, 이상호, 변성만, 김정환 등을 조련하여 종합우승을 들어올린 명장이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인구 10만 남짓한 소도시 영주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에 복싱팀이 각각 1개씩 포진해 경북이 각종 시도대항전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일조하고 있는데 반해 인구 1000만의 수도 서울에는 중학교팀과 대학팀이 전무한 상태에서 고육지책으로 버티는 현실이 묘하게 오버랩되더군요.

복싱 지도자들은 품질 좋은 산삼을 찾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심마니같은 심정으로, 숙련된 세공사가 우수한 원석을 잘 가공하여 보석으로 재탄생시키듯이 그런 과정을 거쳐 우수한 선수를 길러냅니다. 그러한 과정이야말로 지도자가 거쳐야 하는 평범한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문성길복싱체육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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