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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1등 선수의 부모로 산다는 일은 고달프다.
21일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펼쳐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자유형 200m, 박태환(25·인천시청)은 기대했던 금메달을 놓쳤다. 하기노, 쑨양에 이어 세번째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도하, 광저우아시안게임 200m 2연패, '디펜딩챔피언' 박태환이 처음으로 졌다. 어머니 유성미씨 곁에서 조금전까지 "박태환!"을 연호하던 팬이 "에이, 3등이 뭐야"라며 차갑게 돌아섰다.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심코 던진 말은 쓰라린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
유씨는 박태환의 마지막 호주전훈에 동행했었다. 동창여행 중 왼발을 접질려 발목뼈에 금이 갔다. 반깁스를 한 채로, 아들이 좋아하는 밑반찬을 바리바리 포장해 비행기에 올랐다. 매끼니, 전담팀을 포함해 장정 5인분의 식사를 뚝딱뚝딱 차려냈다. '엄마밥'을 먹고 힘을 번쩍 내주는 아들이 고마울 따름,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도 힘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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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에서 기를 쓰며 착지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 '도마의 신' 양학선 어머니 기숙향씨는 21일 남자체조 대표팀의 단체전 현장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양학선의 '강심장'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왔다. 웬만한 일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강한 어머니가 말했다. "그것이, 그 다리로 어찌나 애를 쓰는지,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냥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양학선은 인천 남동체육관에 온 첫날 포디움 훈련중 햄스트링(허벅지 대퇴부 근육)을 다쳤다. 늘 "괜찮다" "걱정말라"던 씩씩한 아들이 처음으로 수화기에 대고 울먹였다. '양학선' '양학선2', 공중에서 3바퀴반(1260도)을 도는 세계 유일의 청년 양학선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허리디스크 증세로 지난 연말 내내 병원 신세를 졌다. 추석 연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중 하루에 2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다. 편도가 퉁퉁 부어올랐다. 열이 펄펄 끓었다. 병원에 실려가는 길, 아들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자 안내던 심통을 냈다. 엄마는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 아픈 걸 몰라줘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역류성 식도염에 편도염까지 겹치며 양학선은 지난 2주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남자체조 단체전 현장에서 3개월만에 아들을 처음 본 엄마는 울먹였다. "볼이 쏙 들어갔더라고, 뼈밖에 없어. 너무 못먹어서…. 내 새끼 불쌍해서 못보겠어."
런던올림픽 금메달 이후 양학선은 더욱 바빠졌다. 1등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힘들다. 주변의 기대치도 높아만 갔다. 그 긴장감과 그 부담감을 외롭게 이겨내왔다.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전 거침없이 신명나게 날아오르던 양학선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리세광, 2연패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어깨를 짓누른다. 부상과 부담감을 딛고 양학선은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체전 메달의 약속을 지켰다. 또다시 투혼이었다. 도마뿐 아니라 링, 마루에서 결선에 올랐다. 첫날 경기직후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엄마'의 마음은 런던때와 똑같다. "학선아, 메달색은 상관없어. 최선이면 된다. 다치지만 말고…."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