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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오노 스페셜한 만남, 평창의 겨울은 따뜻했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2-03 09:25



11년 전 겨울은 잔인했다. 김동성(33)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예상대로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지만, 믿을 수 없는 실격 판정이 주어졌다. 주최국 미국 선수인 안톤 오노(31)의 '할리우드 액션'이 주효했다. 신체 접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깜짝 놀라는 '피해자' 액션을 취했다. 결국 챔피언 김동성은 진로방해를 이유로 실격됐다. 금메달은 오노에게 돌아갔다. 다잡은 금메달을 놓친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반미감정으로까지 비화됐다. 특히 오노에 대한 반감은 거셌다. 각종 개그에서 패러디 소재로 끊임없이 리플레이됐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은 '오노 세리머니'까지 선보이며 분노를 드러냈다. 이후 김동성과 오노는 국제대회에서 수차례 마주치고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겉으로는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오노가 자서전에 "김동성이 '네가 넘버원이고 최고의 선수'라고 말해줬다"는 근거없는 사실을 쓰면서 또다시 해묵은 감정이 폭발했다. 1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오노는 불편하고 얄미운 이름이었다.

2일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한창인 강릉실내빙상경기장에서 '앙숙'같던 두 선수가 해후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통합스포츠체험 행사에 '올스타 팬'으로 참가했다. 지적장애인선수들과 함께 1600m 계주에 나섰다. 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2연속 2관왕에 등극한 '쇼트트랙 여왕' 전이경(37)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여자쇼트트랙 1500m에서 16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금메달을 따냈던 고기현(27)도 '레전드 선후배' 맞대결을 펼쳤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남자 500m 은메달리스트 성시백(26)도 가세했다.

기대했던 김동성-오노의 재대결은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다. 각각 다른 조에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김동성은 이지혜 야르노 브루닝크(네덜란드) 선수와 함께 데이비드 피터(미국) 이진영과 한팀을 이룬 후배 성시백과 맞붙었다. 앞서가는 후배 성시백을 추월하려고 바짝 붙어가던 김동성이 별안간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다시 보는 비장의 '오노 액션'에 관중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오노 역시 '패러디'를 알아챘다. 머리를 감싸안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오노는 중국 쇼트트랙 레전드 스타 양양과 한조를 이뤘다.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카트리나 르메이돈(캐나다)과 맞붙었다. 2014년소치동계올림픽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갈 예정인 오노는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역전승을 이끌며 큰 박수를 받았다.

레이스 직후 인터뷰에서 두 선수는 과거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나경원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위원장과 함께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에 임했다. '투게더 위 캔!(Together we can!)'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대회 슬로건, 화합과 통합의 정신에 깊이 공감했다. 오노는 "우리 모두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스페셜올림픽 통합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왔다. 날씨도 춥고 빙판도 차갑지만, 이 경기장의 에너지는 무척 따뜻했다. 정말 행복하다"며 웃었다. 김동성 역시 "한얼음판에 은퇴한 선후배가 다같이 모여서 이렇게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11년 후, 2013년 한국 평창의 겨울은 따뜻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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