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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친구와의 약속, 마음의 빚. 다 갚을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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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제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선 채 악수를 청했다. "제가 사고 이후에 휠체어 테니스를 하다 보니까 아예 걷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조금 불편할 뿐이지 잘 걸어다녀요"라며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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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사고 후 한 4년 정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좌절도 심했고. 그러다가 재활센터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휠체어테니스에 입문하게 됐죠. 경력이 짧아서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요"라며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짧게 설명했다.
워낙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다 보니 금세 성과를 내기도 했다. 사고 후 9년 만인 2018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로 출전, 쿼드 복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 이대로 쭉 나갔다면 아시안게임 금메달, 나아가 세계선수권이나 패럴림픽에서의 메달도 기대해볼 만 했다.
그런데 김명제는 여기서 또 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라켓을 잡는 손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는 모험. 오른손 투수가 왼손 투수로 전향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김명제에게 이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처음 테니스를 배울 때는 익숙한 오른손으로 했는데, 아무래도 사고 여파로 제대로 힘이 안 실렸어요. 무엇보다 투수 때 공을 던지면서 손상된 어깨가 계속 아파왔어요. 하는 수 없이 2019년부터 왼손으로 테니스를 다시 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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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김명제는 야구선수 시절에도 왼손의 감각이 좋았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왼손으로 공 던지는 연습을 하곤 했어요. 사고 이후에는 오히려 왼손 힘이 더 강해졌죠. 그런데 한동안 실력이 늘다가 지난해 말부터 정체기가 찾아와서 고민입니다. 대회 성적도 안 좋고, 슬럼프가 좀 왔었는데 다행히 올해 초 이천훈련장에 들어와 운동에만 매진하게 되면서 다시 나아지고 있어요"라며 최근의 고민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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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명제의 목표는 올해 10월에 열리는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 메달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왼손'으로 도전한다. 김명제는 "현재 최우선 목표는 역시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이죠. 저에게는 큰 의미일 수 있는 게, 자카르타 때는 오른손으로 쿼드 복식 메달을 땄잖아요. 이번에 왼손으로 따면 양손으로 모두 메달을 획득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도전하는 거죠"라고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다. 일단은 '세계선수권'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내는 것이다. 김명제는 "훈련에 매진하면서부터 자신감이 다시 생기고 있어요. 현재 랭킹 21위인데, 14위 안에 들어가야 자력으로 세계선수권에 나갈 수 있습니다. 다행히 2월말부터 투어일정이 많아서 착실히 포인트를 따내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현재 김명제는 지난 25일 태국으로 출국해 'BNP 파리바 월드 팀컵대회'를 앞두고 있다. 김명제는 "이번 대회는 팀 대항전이라 개인 포인트는 없어요. 하지만 국가대표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집중하는 중이에요. 포인트는 없어도 실전이니까 다음 달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개인 투어 대비의 성격도 있고요"라며 선전을 다짐했다.
김명제는 휠체어 테니스선수로서 목표로 내건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내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나는 프로야구 시절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 관계자와 팬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 것. 그는 "사고 이후에도 두산 김태룡 단장님 이하 프런트 직원분들이 계속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셨어요. 제가 어찌보면 사고를 쳤는데도, 지금까지도 응원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한 거죠. 시구 요청도 있는데, 제가 먼저 잘되고 나서 가야 면목이 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다른 목표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최 정은 "선수 시절 친구들도 많이 격려해줬어요. 삼성 이원석은 휠체어도 선물해줬죠. SSG 최 정하고는 시구자와 시타자로 만나기로 했어요. 다들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과 다시 야구장에서 만나보고 싶어요"라며 왼손 휠체어 테니스선수로서 아시안게임에서 꼭 메달을 따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