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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파리,남북탁구 만리장성 허물던 날의 기록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5-20 10:29 | 최종수정 2013-05-20 10:38



주말 아마 스포츠계엔 즐거운 뉴스가 넘쳐났다. 태극전사들이 남미, 유럽 세계 곳곳에서 메달 소식을 전해왔다. '1초 오심'으로 눈물을 쏟았던 펜싱스타 신아람이 19일 브라질월드컵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오심 상대였던 하이데만을 연장 접전끝에 6대5로 꺾었다. '힐링매치'였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는 벨라루스 민스크월드컵에서 개인종합 4위, 종목별 결선 후프, 곤봉에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리듬체조 월드컵 사상 첫 멀티 메달이다. 런던올림픽 '스포츠코리아'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뜻깊었던 장면은 프랑스 파리탁구세계선수권에서 나왔다. 혼합복식조 박영숙-이상수조의 은메달 쾌거다. 주말 수많은 경기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사건'이다. 겨우 두달 태릉에서 손발을 맞춘 '무명의 복식조'가 준결승에서 만리장성을 넘었다. 2007년 세계탁구선수권 남자단식 우승자인 중국탁구의 자존심 왕리친(세계랭킹 9위)이 세계랭킹 81위 박영숙의 파워 드라이브에 맥없이 돌아서는 장면은 '명불허전'이었다. 결승에선 사상 초유의 남북 대결이 펼쳐졌다. 남과 북이 만났다. 북한의 베테랑 복식조 김혁봉-김 정이 4대2로 승리하며 우승했다. 2003년 남자단식 주세혁과 오스트리아 베르너 슐라거의 결승전 이후 중국 없는 결승전은 처음이었다. 중국은 2005년 이후 남녀단식, 남녀복식, 혼합복식 5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 했다. 남북이 힘을 합쳐 만리장성을 허물었다. 그날의 뒷이야기도 쏟아져나왔다.

사상 초유의 남북 맞대결 풍경

이날 오전 준결승전, 오후 결승전을 앞두고 남북은 경기장내 훈련장에서 함께 몸을 풀었다. 바로 옆테이블에서 서로의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서로를 응원했지만, 결승전을 앞두고는 신경전이 치열했다. 응원석에서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남북이 같은 응원석, 위쪽 아래쪽을 차지하고 앉았다. 북한은 아래쪽에서, 한국은 위쪽에서 열렬한 응원전을 펼쳤다. 한포인트, 한포인트… 공이 오갈 때마다 남북 응원석의 희비가 엇갈렸다. "침착하게!" "영숙아, 잘하고 있어!" "상수야, 코스 봐야지!" 이번 대회 단장을 맡은 '사라예보 신화' 정현숙 대한탁구협회 전무와 '백전노장' 강문수 대표팀 총감독은 간절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신세대의 손끝에서 20년만의 금메달이 나오길 간절히 소망했다. 목이 쉴 만큼 열정적인 응원으로 제자들의 파이팅을 독려했다. 북한 역시 현장에서 나눠준 응원용 '딱딱이'를 일사불란하게 쳐대며 열렬한 응원전을 펼쳤다. 프랑스 파리의 중심, 경기장을 가득 메운 유럽 탁구팬들이 남북한의 대결에 숨을 죽였다. 매세트 직후 작전타임, 막간을 이용해 경기장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퍼졌다. 한국을 배려한 센스있는 선곡이었다. 신이 난 관중들이 '말춤' 시늉을 하며 호응했다.

사상 초유의 남북 합동 기자회견 풍경

북한 복식조 김혁봉과 김 정은 7년 연속 세계선수권에 출전해온 베테랑 복식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처음 호흡을 맞춘 신세대 복식조 이상수-박영숙은 패기에서 앞섰지만, 경험에서 밀렸다. 우승을 향한 한국탁구의 간절함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초반 범실로 상대 페이스에 말리며 2대4로 아깝게 패했다. 시상대에 북한과 한국이 나란히 섰다. 군인인 김혁봉과 김 정은 북한 국가가 울려퍼지자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김 정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상식 후 ITTF측은 남북 공동기자회견을 마련했다. 박영숙-이상수조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199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현정화의 금메달 이후 20년만의 정상을 꿈꿨었다.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해 결승까지 오르게 돼 기쁘다. 우승할 기회를 날린 게 너무 아쉽다"(이상수) "저희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기회가 또 올 것이라 생각한다. 결승전 패배를 쓴약으로 삼아 다시 도전하겠다"(박영숙)

북한 측 답변은 한결같았다. 줄곧 '김정은 동지'를 향했다. 시상대 눈물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김 정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조국 인민의 부탁을 잊지 않고 1등 한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라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김혁봉 역시 "오늘 경기를 이길 거라 예상치 못했다. 조국을 떠날 때 기대와 응원을 많이 받았다. 성과없이 가면 어쩌나 마음이 무거웠는데 1등을 함으로써 위대한 김정은 동지에게 기쁨을 드리게 됐다"고 답했다. 카타르 기자가 남북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이 민감한데, 탁구가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난감한 질문에 선수들이 답변을 망설였다. 박도천 대한탁구협회 국제담당 부회장이 나섰다. "현상황에서 정치적 이슈는 선수들이 답할 문제는 아닌 것같다. 우리는 스포츠맨이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 오직 스포츠맨으로서 탁구세계선수권에 나섰다. 스포츠맨으로서 북한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기자단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기자회견 후 사진촬영이 이어졌다. 이상수 김 정 박영숙 김혁봉, 남남북녀가 서로 짝을 바꾸어 선 채 활짝 웃었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코리아'의 이름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날을 기념했다. 탁구현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훈훈한 풍경에 전세계 취재진이 열광했다. 뜨거운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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