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헌팅도 외모가 무기다'
기사입력 2000년 04월 07일 14시 45분
`컴퓨터와 데이트를 하나?'
요즘 PC방에 가면 파티에 온듯 화려하게 화장을 한 여자나 강한 컬러의 옷의 튀는 복장을 한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상반신까지는 한껏 멋을 냈는데, 아래는 무릎이 툭 튀어나온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을 한 네티즌도 많다는 것.
이렇게 PC방에 `폼생폼사' 바람이 부는 이유는 인터넷 화상채팅 때문이다.
캠이라는 조그만 카메라가 설치된 컴퓨터에서 `오마이러브' `씨앤조이' 등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채팅을 할 수 있다.
헤드셋이 있으면 대화까지 나눌 수 있어 단체 미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채팅 세계에선 외모가 뛰어나면 스타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외모가 좀 `달리는' 사람은 `물관리' 차원에서 대화방을 연 `방장'에게 추방당하고, 대화 내내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네티즌이 채팅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화장발' `캠발' `조명발'이다.
여자는 TV에 출연하는 연예인처럼 속눈썹을 길게 붙이는 등 화장을 `떡칠'한다.
남자도 미소년풍으로 전략을 정한 경우, 깨끗한 피부를 강조하려고 화장을 한다.
`캠발'을 위해 채팅전 밝기, 윤곽 뚜렷이 하기 등 캠의 화면조정은 필수다.
입술이 섹시하면 입만 보이게 하고, 자신있는 각도에서 얼굴을 비추게 위치를 선정하는 등 캠 조정에만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PC방에서 `조명발'이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외모가 `안되는' 네티즌은 분위기로 승부한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 앞에서 로댕의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앉아 고독한 분위기로 관심을 끌다가 가끔 멋있는 말을 툭툭 던진다.
예쁜 여자가 뜨면 즉석에서 `노예팅'이 벌어지는 것도 진풍경이다.
남자들이 화면 앞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베팅을 하는 것.
제일 많은 돈을 제시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대쉬'를 한다.
네티즌들은 이 채팅 프로그램이 컴퓨터 게임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해 일단 빠지면 끊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신촌 네오PC방에서 일하는 황주현양(22)은 "채팅을 하기 위해 매일 PC방에 `출근부'를 찍는 네티즌이 많고, 일주일 동안 PC방에서 먹고자며 채팅만 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외모으로만 상대를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채팅을 자주 한다는 정의석씨(21)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허다하다"며 `외모만능풍조'를 비판했다.
[이영주 기자 s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