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환 '영화우물 파다보니 37년 흘렀네요'
기사입력 2000년 04월 06일 14시 29분
합동영화사 대표이자 서울극장 회장인 곽정환. 그는 37년 동안 영화만을 위해 뛰어온 외과수의 인생을 살아왔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믿음이 그의 오늘을 있게 했다.
곽회장은 지난 64년 영화 `주유천하'를 제작한 이래 오랜동안 수많은 영화를 제작, 배급하면서 한국영화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는 요즘 10㎝를 위해 20억원을 들여 서울극장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있다. 관객들의 관람편의를 위해 객석의 의자 사이를 85㎝에서 95㎝로 늘이고 있는 것. 이것은 서울의 대표적인 극장으로서 다시 한번 면모를 일신하면서 최선의 관객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
그는 요즘 관객 제일주의를 외친다. 보다 나은 관객 서비스를 위해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서울극장의 객석을 고치고 있고, 보다 정확한 영화통계와 티켓서비스를 위해 국가가 지정한 표준전산망을 도입하는 등 일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곽회장은 국가가 지정한 통합전산망 구축에 동참, 오는 5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정확한 스코어(극장 관객동원수)로 입장표를 관리, 시장규모를 파악,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
최근 정부의 영화진흥정책이 활발해 지고 있는 가운데, 곽회장이 내린 결단은, 한국영화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관객들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는 영화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18∼25세의 연령층이 존재하는 한 영화는 영원하다"는 그는, 우리 국민들이 보아서 즐겁고, 감동하고, 감격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한다. 인생에 보탬이 되는 영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술담배는 전혀하지 않으며 1주일에 한두번 나가는 골프(핸디12)가 유일한 운동. "늘 젊게 살아야 밥을 먹는다"는 인생철학을 지니고 있는 곽회장. 지난 60년대 초 1000만환(현100만원)으로 영화일에 뛰어들어 현재 외형적으로는 연간 400억여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한국영화계의 파워맨.
젊은 영화인과 손잡고 한국영화에 적극 투자하고 젊은 감각의 영화를 즐겨하는 곽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천. 자신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그의 청춘이 묻어있는 37년 동안의 영화 이야기와 21세기 비전을 들어봤다.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는?
▲내 나이에, 유치하다고 생각진 말어. `주유소습격사건'이야.(웃음) 우선 재미있어. 뭔가 발산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미까지 담겨있어. 아주 유쾌하게 본 작품이야.
-고향이 이북인데 서울엔?
▲6.25 전쟁 전 누이동생과 서울에서 여관을 하는 이모댁에 놀러왔다가 전쟁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 어이없게 실향민이 된거야. 자의로 어떻게 할수 없는 상황이었어. 기가 막혔지만, 그것도 다 운명이라고 생각해.
-영화와 인연은 언제?
▲군에서 소령으로 예편했지. 퇴직금을 영화제작을 하는 선배한테 빌려줬어. 그런데 그 영화가 실패를 해서 곤혹을 치렀지. 그 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어. 63년에 영화일을 시작, 64년에 합동영화사를 차려서 본격적으로 영화제작을 시작했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겁없이 뛰어든거지. 첫 영화로 신영균 도금봉씨가 출연한 `주유천하'를 제작했는데 성공했어. 운이 좋았던 거지(웃음).
-첫 제작 영화 성공비결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를 제작, 성공을 거두었어. 그때 한국엔 영화제작 관련서적도 없던때 였어. 일본책들을 구해서 읽으면서 공부했지. 혼자, 나름대로 경제성이 있는 영화제작방법을 생각했어. 영화는 대중예술이고 관객들을 상대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지. 그만큼 프로정신이 투철해야한다는 점을 터득한 게 가장 큰 소득이었어.
-영화제작자란 직업의 매력은?
▲재밌어. 사물을 글로 옮기고 영상에 담아 관객들을 만나 성공을 거두면 희열을 느끼지. 말로는 못해.(웃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영화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사람(극중인물)으로 나오면 성공했고 연기자로 비쳐지면 실패한다는 거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스크린속에 존재하는 거지.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성격이 외과수야. 뭘하면 그것만 생각하는 성미라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하지. 한가지 일만 붙잡고 끝을 보는 성격이지. 영화는 작품의 완성도가 있었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일 자체는 하나의 업이지. 그 업은 완성되는 것은 아니건 같아. 길을 가듯 끝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게 최선이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은아 신성일 그리고 윤정희의 데뷔작인 `청춘극장'이지. 흑백영화에서 천연색 영화로 바뀐 첫 영화야. 영화제작자로서는 획기적인 사건같은 영화였지.
-결혼도 영화가 맺어준 인연인데?
▲지난 66년이지. 당시 투철한 군인정신을 담은 영화 `강제규 소령'을 제작했는데 여기에 지금의 아내(고은아)가 출연했었지. 강제규소령의 부연역할이었지. 그 영화를 내가 만들고 고은아가 출연하면서 결혼을 하게된 동기가 됐지. 자식은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승남)은 서울극장에서 일하고 딸(승경)은 하프 연주자인데 얼마전 독일 유학을 하고 돌아왔어. 우리 부부는 세상에 노출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 본은 못될 망정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컸지.
-가장 가슴 아픈 영화는?
▲우리 영화사로서는 최근작인 `애니깽'이야. 조선인의 멕시코 노예사를 다룬 영화인데 정부에서 지원도 받고 했는데 흥행에 실패했어. 300여편의 영화 중 작은 실패를 본 영화는 있었는데 이 영화처럼 크게 손해를 본 작품은 처음이었어. 그러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영화였어. 아쉬움이 컸어.
-요즘 한국영화에 젊은 영화인들 돌풍인데?
▲좋은 일이지. 강우석감독을 비롯한 젊은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지. 새로운 세기, 한국영화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어. 또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웠어. 이들이 있어 우리 영화산업의 미래가 밝어.
-강우석 감독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데?
▲3년전 한국영화가 된다, 한번 해보자며 함께 일하게 됐지. 훌륭한 동업자를 만난 셈이지. 시기적으로도 생각이 맞아 떨어졌어. 모든 게 다 잘됐어. 한국영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했다고 생각해. 감감독은 정직하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또 상대와의 비즈니스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 의심을 주지 않아. 그만큼 신용이 큰거지.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청년'(웃음)이지.
-강우석 감독의 장점은?
▲영화를 농사로 비유하면 제작은 씨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동안 나는 씨를 뿌릴 밭을 갈아온거나 마찬가지지. 그 밭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씨앗을 찾던 중 감감독을 만났어. 그래서 오늘의 성과를 이룬거지.
-최근 극장을 보수하고 있는데?
▲전관을 수리하고 있어. 관객들이 제일 중요해. 극장은 팬들에게 안락한 시설을 제공해야해. 깨끗해야하고, 친절해야하고, 좋은영화를 상영해야해. 규정에는 하자가 없지만 한국인의 체형이 커진 만큼 객석 사이도 넓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20억원 들여 객석을 뜯어 고치고 있어. 85에서 95㎝로 넓히는 작업인데 돈이 너무 들어(웃음).
-최근 국가가 지정한 통합전산망을 시작한다는데?
▲표준전산망은 꼭 해야해. 정부도 적극유도하고 있고 영화산업과 유통구조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필요한거지. 정확한 데이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영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겠지. 국가입장에서 꼭 필요한 일이고, 관객들에게 좋은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다만 수수료, 설치 비용 등에 대한 의견차로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5월부터 운용할 예정이야.
-통합전산망 실시의 효과는?
▲명확한 소득, 그에 따른 세금 그리고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져야겠지. 5년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서 관객수 통계가 불확실했었다고 해.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야. 세금을 내는 통계는 정확해. 영화는 흥행을 위한 속성상 관객수 많으면 적게, 적으면 많게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 우리 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계가 마찬가지야. 영화가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보다 정확한 시장규모 파악이 필요해. 서비스도 다양해지면 더욱 좋겠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문민정부 말부터 시작돼 국민의 정부에 와서 소재개방이 이루어졌어. 그리고 제작자금도 적극지원되고 있어. 이제 두가지 여건이 영화계에 주어졌어. 공은 이제 영화인에게로 넘어왔어. 우리 영화의 르네상스가 올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력해 동남아와 세계시장을 개척해야해. 우리 영화 발전할수 있는 최고의 찬스야.
◇곽정환 회장은? 1930년 평북 용강군 해운면 온정리 출생. 성균관대 졸업(59). 합동영화사 대표이사(64). 영화제작자협회장(74). 전국극장협회장(81) 서울시극장협회회장(현). `홍의장군(73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어머니(76"), `경찰관'(78") `사람의 아들'(80 ") 등 300여편의 한국영화 제작, `빠삐용'등 외국영화 150여편 수입. 서울극장 회장.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