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29)
기사입력 2000년 04월 05일 14시 01분
화장실의 문이 열리기 전에 이대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서 침대의 왼쪽 공간을 더 크게 비워 두고는 시트를 목까지 덮은 채 반듯이 누운 자세였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오만 감각이 다 곤두선 상태여서 상큼한 비누냄새도 났고 슬리퍼가 양탄자 위로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불을 끌까요?"하고 고윤희가 낮게 물었으므로 이대진은 금방 "예."하고 대답했다가 입맛을 다시고는 왼쪽에 등을 보이고 누웠다.
또다시 기선을 제압당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수건으로 머리 터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트가 젖혀지면서 침대가 출렁이며 흔들렸다. 이제 비누에다 살 냄새까지 맡아졌고 등이 허전했다.
그쪽에서 시트를 당겨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대진은 다시 천정을 바라보고 돌아누웠다. 방의 불을 껐지만 창밖의 희미한 빛발 때문에 천정의 형광등 윤곽도 드러났다.
이대진이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자꾸만 침이 고이는 군."
그러자 역시 반듯이 누어있던 고윤희가 짧고 낮게 웃었다.
"긴장하면 당연한 현상이니까 그냥 삼키세요."
"당신의 생리적인 반응은 어떻습니까?"
"침이 고이지는 않아요. 오히려 입안이 마르는 것 같은데요."
"그것 참, 역시 남녀의 성적 조화는 절묘하단 말이야."
"좋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
불쑥 뱉은 고윤희의 대답에 부드러워지려고 했던 이대진의 분위기가 금방 부숴졌다. 이대진이 다시 입맛을 다셨다.
"당신은 노련하군 그래."
"닷새동안의 공략으로 저를 어떻게 하실수는 없어요."
"그럴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어요. 나는 단지."
그러자 고윤희가 손을 뻗어 이대진의 손을 쥐었다.
"그냥 이리 오세요. 그것이 더 자연스럽겠네요."
"생각 없습니다."
"남자 생리는 생각하고 다르지 않나요?"
"이런 빌어먹을."
고윤희의 손을 뿌리친 이대진이 상반신을 비스듬히 젖혀세웠다.
"그럼 한수 가르쳐 주시겠소?"
그때 고윤희도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왜 이렇게 복잡해요? 그냥 안으면 해준다고 언질을 주었는데도?"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 이대진이 마른 침을 삼켰을 때 고윤희 잠옷 속의 알몸이 다 드러났고 그녀의 짙은 숲까지 다 보였다.
"오세요."
거부할 명분은 커녕 아까부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던 이대진이다. 이대진은 고윤희의 몸 위로 엎어졌다. 그랬지만 가슴은 웬지 삭막했다.
대학시절에 숏타임을 뛰려고 했을 때의 기분도 지금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고윤희는 자연스럽게 이대진의 목을 두 팔로 안았지만 눈은 감았다. 이대진의 몸이 거칠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 눈살을 찌푸린 고윤희가 이를 악무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나도 여자의 생리를 조금은 압니다."
이대진이 고윤희의 귀에 뜨거워진 숨을 뱉으며 말했다.
"지금 당신의 몸도 아주 기쁘게 내몸을 받아들이고 있군 그래."
그는 입술을 고윤희의 입에 붙였지만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윤희의 몸은 뜨거워져 갔고 샘은 가득 고였다.
"당신은 매력이 있어."
마침내 이대진이 거친 숨을 뱉으면서 그렇게 말했을 때 고윤희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