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박창수 '특권층 병역비리 사라져야'
기사입력 2000년 03월 30일 14시 55분
내가 군 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지도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해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군의관 신체검사를 받기위해 대구 삼사관학교에 집합, 장장 3박4일 동안의 긴 신체검사를 통해 현역과 예비역으로 분류되었다.
나야 다리가 짧은 것 빼고는 모든 신체가 다 건강했으니 당연히 현역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체검사가 시작되면서 혹시나 하는 긴장과 설레임 때문에 나의 마음은 벌써 전방 초소에 가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같이 간 동료 중에 이상한 몇몇 놈들이 끼어 있었는데 그중 한 놈은 남들 보는 앞에서 체중불리기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놈은 강호동 같은 몸매로 100㎏의 거구였는데 1㎏이라도 더 체중을 늘리려고 신체검사를 받는 3박4일 동안 눈물겨운 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남들은 살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놈은 집에서 메고 온 아주 큰 음식 보따리를 밤에는 베게삼고 낮에는 신주단지 모시듯 안고 다니며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쉴새없이 깡통을 따 먹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놈들이 그 깡통 과일이 먹고 싶어 남은 국물이라도 달라했지만 왠걸! 들은 척도 안 하고 국물까지도 `싹싹' 핥아먹는 것이었다.
"저 놈은 전생에 깡통귀신이었나?"
포도깡통, 복숭아깡통, 귤깡통, 후르츠깡통 등등을 한꺼번에 몇통씩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 모습이 `인간돼지'같아 안쓰럽고 딱해 보였다.
`나 같으면 저렇게 고생 안하고 군대에 가겠구먼, 쯧쯧!'
그뿐인가! 어떤 놈은 머리털이 동그렇게 빠지면 현역에서 빠질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억지로 머리털을 잡초 뽑듯 쥐어 뜯는가 하면….
100m도 넘는 먼 거리를 지나가는 여자의 다리털도 잘 보던 놈이 갑자기 안보인다고 하지를 않나, 나랑 질긴 개고기만 뜯어먹던 놈이 웬 `부정교합치열'이고, 매일 밤마다 술과 여자만 밝히던 놈은 어쩌다 허리디스크에 걸렸는지.
그뿐인가 평소엔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자기가 정신분열 증세가 있다고 `미친척'하지를 않나, 또 한놈은 제 발바닥 쳐다보며 평평하다고 감탄하지를 않나.
정말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지.
내참 기가 막혀서!
어쨌거나 나는 그런 놈들 틈에서 비록 다리는 짧지만 대한민국 육군대위 군의관으로 맹호부대에 입대를 했고 해괴한 짓 하던 놈들도 결국은 다 군대에 끌려갔었지.
"짝짝짝∼ 빰빠라 빰빠라 방∼ 빰빠 방∼"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병역비리 또한 비리가 깊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왠놈의 군대 안간 놈들이 그리도 많은지.
음지에 숨어있던 병역비리들이 불쑥불쑥 독버섯처럼 삐져나온다.
이럴때마다 일반 시민들은 `빈부의 차이'를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고 일부 몰지각한 특권층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요즘 시청자들의 소감문까지 받는다는 인기 절정의 휴먼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허준은 당당히 군대에 가서 병역의 의무를 마쳤을 것이고 유도지는 어머니의 휘날리는 치맛바람으로 고관들에게 금품과 보약을 주고 병역면제를 받았을 것이며 약삭빠른 병부잡이 임오근은 방위병으로 빠졌을 것이다.
돈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요즘 세상이지만 병역의 의무만큼은 누구나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
일부 몰지각한 부모들의 그릇된 생각 때문에 허준같은 아들을 유도지나 임오근같은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어 사회에서 어깨 펴지 못하고 사는 인간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멀쩡한 자기 아들의 한쪽 눈만 수술시켜 병역면제를 받은 한심한 어느 부모의 신문기사를 보면서 15년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행군에서 쩔뚝거리면서도 "군의관님! 제 다리가 아파도 끝까지 천리행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어느 맹호부대 병사의 뜨거운 또 다른 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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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부터 금요일자 SC칼럼 집필자가 안과전문의 박창수원장으로 바뀝니다. 그동안 건강면에서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글을 써주었던 박창수원장은 보성고 경희의대를 거쳐 지난 92년부터 97년까지 서울 강남병원 안과과장으로 근무했으며 92년부터 지금까지 경희대 의과대학 외래조교수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05－7 동일빌딩에 박창수안과를 개원한 안과전문의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