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레디고 '고정관념 깬 개성파 시대'
기사입력 2000년 03월 27일 14시 27분
몇년전 어느 술자리에서 취기를 빌어 성기형(안성기)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형, 형은 형이 잘생겼다고 생각해요?"
느닷없는 질문에 성기형은 순간 당황한 눈빛이더니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사실 잘생긴 건 아니지 뭐."
그보다 얼마전에 나는 중훈이(박중훈)에게 더 강도높은 질문을 던졌었다. "중훈아, 너도 참 난놈이다. 그 얼굴로 스타가 됐으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그러자 박중훈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뭐 제 얼굴이 그렇게 나쁘지는 안잖아요."
본인의 생각을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출연작마다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한석규도 내가 보기엔 잘생겼다고 볼 수 없다.
어디 이들 뿐인가? `주유소 습격사건'의 유오성은 특별한 분장 없이도 무식한 습격자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지 않았는가?
몇년전 내가 투자한 영화 `초록 물고기'의 시사회를 마치고나서 였다. 나는 그 영화에서 불과 몇장면에 등장했던 송강호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정말 그는 그 영화에서 `깡패출신이 아닌가'란 의심이 들 정도로 깡패 역할을 멋지게 연기했다.
그날 나는 송강호와 4차까지 술을 함께 마시며 "당신은 틀림없이 대스타가 될거야"란 말을 했는데, 그는 "생긴게 이래서…"라며 겸손해 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적중해 그는 `넘버 3'로 스타가 되더니, `반칙왕'으로 톱스타가 되고 말았다.
사실 옛날엔 스크린 스타라고 하면 신성일 낭궁원 정도로 수려한 미남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다. 요새 이 정도 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스타는 J군이나 또다른 J군 정도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여배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2명을 제외하곤,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 예쁘지도 않은데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너무 잘생긴 건 대중들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객들의 눈이 낮아서, 아니면 나보다 관대해서 별로 예쁘지도 않은 배우들을 예쁘게 봐주는 걸까?
해답은 시대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사실 요즘 N세대 스타들을 보면, 미의 기준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개성시대다. 예전엔 개성파가 잘나가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했지만, 요즘엔 개성파들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전면에 나와 있다.
개성이 아름다움이다. 그 개성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잘 가꾸느냐가 중요하다.
스크린에서 박중훈과 한석규를 보라. 정말 그들이 잘생겼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스크린에 녹아난 그들의 열정에는 정말로 팬들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비단 영화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개성이 강조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파괴됐고, 사람의 능력에 대한 고정관념도 파괴됐다.
기존의 잣대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안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제작자나 감독이라면 `반칙왕'이란 영화에 송강호를 기용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칙왕'을 본 관객들에게 물어보라. "송강호보다 반칙왕 역할을 더 멋지게 해낼 배우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내 생각엔 금방 대답할 관객이 별로 없을 것같다.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