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횡설수설 '뉴스탈출 달콤한 휴식'
기사입력 2000년 03월 17일 14시 48분
단 며칠간이라도 신문과 TV를 안 보고 살 수는 없을까?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망상일 뿐이다. 너나 할 것없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사실상 신문과 TV의 노예가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해 냈다. 얼결에 해냈다. 무려 4박5일 동안 완벽하게 신문과 TV를 끊고 살아봤다. 선거공천 낙천 지역감정 이딴 너절한 소리 안듣고 꼬락서니 안보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 시말은 대략 이렇다. 지난주 나는 호주의 골드 코스트라는 곳을 다녀왔다.
비행기 아홉시간 가지만 시차가 불과 한 시간 밖에 안나서 좋고 계절이 우리와는 정반대로 여기가 겨울일 때 거기는 한 여름이어서 좋았다. 거긴 지금 여름의 끝이었다.
딱 짤라 말해서 호주의 골드 코스트는 내가 지금까지 가본 휴양지 중에서 단연 최상이었다.
내 돈으로 다녀온게 아니어서 더욱 좋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ING라는 이상한 이름의 단체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알고보니 ING는에 본사를 둔 국제 생명보험그룹이었다.
4박5일의 초대였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응했다.
나는 매주 TV녹화(KBS 2TV `체험 삶의현장')가 있기 때문에 긴 여행은 엄두를 못낸다. 지난 7년 동안 그랬다.
나는 골드코스트에서 유일하게 별 다섯개 짜리인 쉐라톤 미라지 호텔에 묵었는데 거기엔 이미 ING직원 500명이 와 있었다.
내가 구차하게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따로 있다. 내가 도착한 날 저녁 나는 소위 말하는 턱시도 파티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순 한국사람 500명의 남녀가 벌인 완벽한 턱시도 디너파티였다.
그건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광경에서나 봐왔던 일이다.
먼 이국땅 어느 한 장소에 순토종 한국 선남선녀 500명이 검은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한 것이다. 나로선 실로 처음 보는 뜻밖의 광경이었다.
`아! 우리도 어느새 이렇게 됐구나'하는 일종의 자부심, 이건 엄청난 쾌감으로 다가왔다.
물론 나도 준비해간 턱시도를 받쳐 입고 한마디 할 기회를 얻어 큰 소리쳤다.
"여러분! 나는 열독률 1위 스포츠 조선에 매주 단골로 글을 써 내는 사람입니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 대로 우리한테도 이런 멋진 품격의 파티가 있었다는 걸 꼭 쓰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거기 골드코스트에서 나는 한 두가지로 흥분한게 아니다.
끝이 안보이는 해변(아! 불쌍한 해운대여!), 밀가루같이 뽀송뽀송한 모래알 직사광선, 맨발로도 하루 왼종일 쏘다닐 수 있을 거대한 쇼핑몰 그리고 무엇 보다도 고개만 돌리면 눈에 뛰는 한국 자동차들.
현대 대우 삼성 기아 만세!
그리하여 돌아오는 날 KAL 탑승구 앞에 놓여진 한국신문을 집어 들면서 나는 새삼 최후의 쾌감에 젖었다.
`아! 나는 해 냈구나. 빌어먹을 신문과 TV를 안보고 4박 5일이나 살았구나. 그걸 안보고도 멀쩡히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구나!'
그러면서 나는 지금 또 신문에 실릴 글을 쓰는 중이고 또 계속 TV에도 출연해야 한다. 이건 말 그대로 빌어먹을 일이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P.S: 오늘 비행기 안에서 미녀 골프선수 정일미 양도 만났다. 내가 남자 소개시켜 준다고 큰소리 쳤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