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전여옥 '캠퍼스 추억 안고 인생 재충전'
기사입력 2000년 03월 15일 13시 58분
대학을 졸업하던 날, 나는 도서관앞에서 폼잡고 가장 친한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악랄한 내 친구들은 우리를 향해 야유를 퍼붰다. `야!너희 둘 양심 좀 있어라. 공부는 하나도 안한 애들이 도서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니…'라고 말이다.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깐 우리는 박박 우겼다.
`말좀 골라서 교양있게 좀 해라. 우리가 도서관에서 공부만 안했다 뿐이지,이 학교에서 제일 시간 많이 보낸데가 바로 여기다, 여기' 이 말에는 모두들 할말이 없었다. 우리 둘은 공부만 안했지 도서관에서 잡지보고 커피마시고 심심하면 지하 매점에서 컵라면먹고 수업 외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의 격렬한(?) 논쟁이 눈에 선한 대학에 이번 봄부터 다시 다닌다. 나는 뇌의 충원이 필요하다는 고전적인 생각에서 입학을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늙은 대학원생이 되어 학교에 다시 오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 듯 하다. 무려 20년전 내가 학교에 다닐 때 100원하던 자판기 커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커피값은 약간 오른 150원이었다. 내게 150원이라는 가격은 눈물겹게 감동적이었다. 시내의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비교해서 그 싼값이 감동적이기 보다도(물론 이것 역시 감동적이다)오랜 세월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학교의 모습이 내게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어제의 동지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지나가다 보면 그 옛날 도서관에서 나와 내친구를 구박하던 `범생이'친구가 어엿한 교수가 되어 나를 반긴다. 또 나처럼 후줄그레 한 모습으로 책가방을 낑낑거리고 가는 늙은 학생을 얼핏 보면 옛날 같은 과친구이다. `어쩜!옛날하고 그렇게 똑같니.하나도 안늙었다'라고 깡충깡충 뛰면 그 친구는 말한다. `남들 안듣게 조용히 이야기해. 아이들이 저 아줌마 둘다 살짝 간 것 같아 할꺼야'라고.
물론 학교는 변했다. 무엇보다 인구가 엄청 늘었다. 역시 오랜만에 만난 과친구에게 무심코 이야기했다. `얘-웬 아이들이 이렇게 많니? 우리 때는 안그랬잖아' 그러자 그 친구가 약간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우리가 학교로 돌아와서 그런 거야. 쟤들은 아마 우리보고 저 아줌마들은 왜 학교에 다시 와서 인구를 늘리니? 그럴꺼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왜 대학에 다시 `늙은 학생'으로 돌아왔을까? 대학때 하도 놀아서 `공부'에 포한이 맺혀 돌아온 것은 물론 아니다. 뒤늦게 공부해서 무엇을 해보려는 목적성도 아니다. 나는 과연 왜 학교로 돌아왔을까? 학교 안을 여유롭게 걸어다니면서 나는 그 답을 얻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게 휴식이며 휴가라는 것을,그리고 모처럼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을,여행은 추억을 만드는 것. 나는 다시 학교에 와서 20년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 내 삶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 학교에서.
[방송인 satuki＠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