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카사노바] 가짜 재미교포 사업가 (14)
기사입력 2000년 03월 13일 13시 28분
호숫가를 거니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둘은 다시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강가에 별장처럼 지어진 카페와 토속음식점들이 군데군데 나타났다. 강성수는 어느 토속음식점 앞에 차를 세웠다. 그 집 앞에는 도토리묵, 파전, 산채비빔밥 등 듣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우리 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게 어떨까요. 윤여사님네 음식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
"괜찮아요. 이런 집에서 먹는 맛은 또 다른데가 있어요."
둘은 도토리묵과 파전을 시켜놓고 일동막걸리를 마셨다. 술이 거나해지자 강성수가 말을 꺼냈다.
"저는 윤여사님을 처음 본 순간 남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식으로 청혼하고 싶습니다."
윤미혜는 가슴이 찡했다. 13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겨준 유산으로 식당을 차려 운영하느라 한눈 팔사이가 없었다. 주위에선 재혼하라고 성화였고 젊은 나이에 밤이 외롭기도 했지만 어린 두 아들까지 키우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냈다.
이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식당도 자리를 잡아 여유가 생겨 늦게 나마 재혼하려는데 괜찮은 남자가 다가와 마음을 설레고 있는터에 이렇게 청혼까지 하다니 꿈만 같았다. 윤미혜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만난지도 얼마 안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제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돌아가야 되고 가기 전에 결정하고 싶습니다."
"제게도 생각할 여유를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결혼승낙을 받을때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기다릴 것입니다."
강성수는 윤미혜의 표정에서 그동안의 `작업'이 다됐음을 확인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에 한번만 더 만나면 `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온 것이다.
윤미혜를 바래다 주고 김숙경의 오피스텔로 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김숙경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응, 미국 손님에게 산정호수를 구경시켜줬지. 오는 길에 토속음식점에 들렀는데 그 친구 도토리묵하고 파전을 되게 맛있어 하더구먼. 일동 막걸리잔을 연신 비우더라구."
"한잔 더 하시겠어요?"
"양주좀 있나?"
강성수는 양주잔을 비우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 친구가 시장을 대충 훑어보더니 정확한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는거야. 온 김에 시장조사를 하고 가야겠다는거야."
"또 오려면 비용이 더 들테니 온 김에 하라고 해야죠."
"시장조사 비용을 지불해줘야 돼. 그래서 말인데 돈 좀 더 줘야겠어. 내 미국가면 배로 갚아줄께."
이래서 2000만원을 더 뜯어냈다.
그날밤 둘은 길고 진하고 격렬한 파티를 벌였다.
다음날 강성수는 집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1000만원을 던져주고 `하우스'로 갔다. 김정환이 잡아끌고 나가더니 "어떻게 됐어?"하고 다그치듯 물었다.
"거의 다 되긴 했는데 너 한테 밀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 새끼가, 호구 찍어주니까 독식하려고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몫은 떼어줄께."
"약속지켜야 돼."
"알았어 임마, 내가 의리 안지키는 것 봤어. 그리고 이건 착수금이다."
강성수는 500만원을 던져줬다. 그리고 함께 들어가 고스톱판을 벌이다 김숙경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일요일 윤미혜를 불러내 `작업'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하우스'로 출근하며 날짜를 보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