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이성진 칼럼 '인터넷의 마인드 인프라'
기사입력 2000년 03월 07일 15시 06분
`익명성의 양면성'
인터넷 세상을 대표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익명성, 즉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익명성은 인터넷 세상의 어두운 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감출 수 있어 욕설이나 비방을 서슴없이 할 수 있고 사이버 스토킹이나 해킹 등 범죄행위도 쉽게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티켓, 즉 네티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나 해커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익명성을 단지 해결할 수 없는 골치아픈 면이라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익명성 또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약 70여개로 추산되는 국내 안티사이트의 경우 이런 익명성 때문에 활발한 정보의 교류가 가능하고 소비자 권익운동을 전개하는 데 힘을 얻고 있다. 해당 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익명으로 중요한 정보를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세계에서는 자신이 처한 직업적, 신분적 처지 때문에 공익을 위한 행동보다는 개인적인 피해를 방어하기 위한 소시민적인 행동에 무게가 쏠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다.
비록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잘못된 부분을 해당 홈페이지에서 익명으로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언제든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서 익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다. 자기가 흠모하는 사람의 홈페이지에 가서 익명으로나마 자신의 안타까운 연정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최근에 인터넷 세상에서 많이 시도되는 불우이웃 돕기 운동은 익명의 편의성 때문에 실세계보다 더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비록 내놓기에 손이 부끄러운 액수이지만 익명이라는 장점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사이버머니를 남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난치병을 치유한 사례는 인터넷 세상을 훈훈한 곳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익명성으로 인한 갖가지 행동은 인터넷 세상을 보다 더 활기찬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익명성의 양면성을 어떤 방향으로 쓰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네티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정보인프라가 아니라 이런 마인드인프라가 아닐지.
[데일리클릭 보도국장 master@dailyclic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