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26)

기사입력 2000년 02월 24일 14시 30분


장용수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이대진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나 혼자 갈테니까 넌 호텔에서 기다려."

"싫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머리까지 젓고난 정현희가 눈을 치켜떴다.

"저도 같이 가야돼요. 그래야 손발이 맞아요."

"까불지 말고."

이대진이 정색했다.

"그래야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단 말이다."

"보스는 그걸 예상하고 있는거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거다."

"그러니까 둘이 가는 것이 나아요."

"장난이 아니라니까."

이맛살을 찌푸린 이대진이 정현희를 노려보았다.

"나한테서 10시까지 연락이 없으면 대사관에 신고를 해. 장용수의 연락처와 함께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이 낫겠다."

찌뿌둥한 표정의 정현희를 바라보던 이대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하더구만. 넌 장용수를 갖고 놀았어."

"개자식 아녜요? 만일 탈북자들을 실제로 데리고 있다고 해도 말예요. 1인당 5만위안이나 내라니, 다섯이면 25만위안이나 돼요."

"전문가 같다. 혹시 조선족 폭력조직인지도 모르지."

"정말 괜찮겠어요?"

정현희의 시선을 받은 이대진이 손을 뻗쳐 정현희의 손을 쥐었다. 그러자 시선을 내린 정현희가 이대진의 손을 마주쥐었다. 택시는 속력을 내어 달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돈은 네가 갖고 있다고 할테니까. 돈이 목적일테니 돈을 받을 때까지는 별일 없겠지."

혼잣소리처럼 이대진이 말했을 때 정현희가 손을 빼더니 손에 배인 습기를 스커트에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이대진의 손을 제가 먼저 잡았다.

"대사관보다 성한 공사쪽에 먼저 연락을 하겠어요. 그곳에는 북한쪽 사람들이 있을테니. 눈에 불을 켜고 찾겠지요."

퍼뜩 시선을 든 이대진을 향해 정현희가 입술끝을 올리며 웃었다.

"장용수는 박살 나겠지요?"

그러나 만일 탈북자들이 실제로 있다면 그들도 함께 박살이 날 것이다. 정현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린 베이징에 왔다가 장용수의 연락을 받고 만났다고 하지요. 그래서 보스가 끌려들어서 문제가 생겼다고."

"그렇게되면 탈북자들은 죽어."

"보스가 우선이예요. 난."

그렇게 말을 뱉고난 정현희는 위안이 조금 되었는지 길게 숨을 뱉았다.

"내가 가고 보스가 남으면 좋을텐데."

혼잣소리처럼 말한 정현희가 힐끗 이대진을 보았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배어져 있었다.

"잡혀있는 날 구해내려고 보스가 뛰어 다닐 것 아녜요? 그때의 난 무섭기 보다는 행복할 것 같아요."

"이건 도무지."

손을 빼낸 이대진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정현희를 보았다.

"장난하는 거냐? 너, 지금 연속극 촬영하는 줄 알어?"

"저도 모르겠어요."

금방 정색한 정현희가 머리를 저었으므로 이대진은 혀만 찼다. 정현희가 다시 중얼거리리 듯 말했다.

"보스하고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절박한 분위기도 실감이 안가고 그냥 떠 있는 것만 같아요."

"정신 똑바로 차려."했지만 이대진의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얼굴은 찌푸려진 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