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한국식당과 일본인손님
기사입력 2000년 02월 21일 13시 57분
최근 한국식당에는 IMF를 맞아 돈벌러 일본에 건너온 한국사람들이 주로 일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한국인 불법체류자만도 약 7만여명. 하지만 일본출입국관리국의 관계자에 따르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온 이들까지 합하면 15만∼20만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식당과 술집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아카사카나 신주쿠, 우에노 등을 가보면 부딪치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취직이 안 돼 온 사람. 부도가 나 도망온 사람, 엔화 가치가 높은 것을 노리고 온 사람 등 개개인의 사정은 다르지만 목적은 단 한가지. 돈을 벌어 금의환향하는 것. 때문에 이들 한국사람들은 마키 사장이 말한 것처럼 24시간 한국식당이나 술집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두더지처럼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부부도 명동에서 양장점을 경영하다가 5000여만원의 부도를 내고 일본에 도망을 왔던 경우다. 그들은 신주쿠에서 5년동안이나 24시간 영업 식당을 운영하여 거액의 몫돈을 챙겨 귀향했다. 빚을 탕감한 건 물론. 언젠가 한번 그들 부부는 자신들의 일본생활이 `짐승같은 생활'이라며 울부짖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그들은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지금은 한국에서 대형갈비집을 열어 성업중이다.
하지만 일본에 온 한국인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만은 아니다. 열흘벌어 한달을 흥청망청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월급타는 즉시 파칭코에 퍼붓는 `어글리 코리언'도 있다. 식당 주방의 일부 아줌마들은 셋만 모이면 고스톱이다. 또 유흥업소에서 일본남성들에게 웃음과 몸을 팔아 번 돈으로 한국호스트바에 달려가 한 번에 20만∼30만엔의 팁을 뿌리는 한국여성들도 있다.
옛날에는 대부분 일본손님이었던 식당과 술집이 최근에는 한국인 손님들로 붐빈다. 말하자면 한국인끼리 주고 받는 것이다. 때문에 본국에 송금하는 돈이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이같은 한국인들의 실태를 너무도 잘알고 있는 것이 일본 매스컴 종사자들. 때문에 마키 사장은 자신의 단골인 한국식당 주인 부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갈 것도 두 번 가게 되더란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자주 가는 한국식당은 모두 잘 된다는 게 마키 사장의 말이다.
아카사카의 한국식당에는 정치인, 사업가, 매스컴 관계자들이 많고 신주쿠에는 샐러리맨이나 학생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아카사카가 사업적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곳인 반면 신주쿠는 순수하게 한국이 좋아 한국음식과 한국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 찾는 `한국마니아'들이 대부분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세 여자가 만나 일본연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돌솥비빔밥을 먹으며 한국에 대해 실컷 이야기 했다(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TV에 돌솥비빔밥이 소개된다. 24시간편의점에서는 아예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을 정도). 그러던 중 마키 사장이 한마디 했다.
"왜 한국사람들은 비빔밥을 맛있게 잘 만들면서 사람들끼리는 왜 잘 못 어울리는지 모르겠어."
한국사람은 모이면 의견통일이 잘 안되는 것을 꼬집는 것이었다. 비빔밥은 적당히 맛있게 잘 비벼대는데 왜 사람일은 그렇게 못하느냐는 지적에 나는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을 음식처럼 요리할 수 있었으면 옛날에 남북통일이 되었게요."
아무튼 최근 일본에는 한국음식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인기있는 외식조사에서 늘 1위인 갈비를 비롯해서 비빔밥, 냉면, 김치 등은 일반 식생활로 정착되었을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상하게도 한국음식이 일본에서는 건강식품 대체용으로 애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음식이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될 정도다.
감기엔 김치찌개, 빈혈과 어지럼증 등의 영양보충에는 갈비, 다이어트에는 고춧가루와 김치, 비빔밥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알고 있다. 실제로 김치찌개를 먹고 감기가 감쪽같이 나았다는 일본인들도 많다. TV에 나와 증언하는 연예인도 있다. 때문에 너도나도 일본인들이 한국음식을 애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국식당과 일본인 손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