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코오롱과 결별후 '자신과의 싸움'
기사입력 2000년 02월 13일 23시 14분
2시간7분20초의 한국기록으로 골인선을 넘어서는 순간, 이봉주는 오인환코치를 얼싸안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에게는 이번 한국기록 갱신이 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이봉주는 지난해 10월 코오롱 마라톤팀 이탈파문 이후 단잠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얘기다.
대부 정봉수감독(코오롱)의 팀잔류 요청을 뿌리쳤다는 죄책감과 그와 동행한 후배들을 추스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 출전 직전까지 경남 고성 방항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3개월여 동안 `나홀로' 훈련을 해왔다. 비록 코오롱에서 그를 지도했던 오인환 코치가 곁에 있었지만 이봉주는 혼자나 다름없었다. 잠자리도 보잘 것 없었다. 깨끗한 호텔을 뒤로하고 허름한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육상경기연맹에서 매월 지급되는 100만원이 공식 훈련비의 전부였다. 나머지는 주위의 격려금과 사비로 충당해야 했다.
훈련에 지칠 때면 "여기서 쓰러지면 후배들 볼 낯이 없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곤 했다. 그는 비록 정봉수감독의 곁을 떠났지만 훈련방식과 식이요법은 `정봉수 식'이었다.
마라톤은 식이요법을 거치지 않으면 완주가 불가능하다. 정봉수감독은 인간한계점인 `30㎞ 이후'를 특유의 식이요법으로 극복케 했던 것이다.
이봉주는 이날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한국기록 갱신으로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며 시드니올림픽 출전티켓을 따냈다. 96애틀란타올림픽에서 2위에 그친 한을 풀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김 용 기자 ykim＠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