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영화 에세이집 펴내
기사입력 2000년 02월 13일 15시 51분
같은 곳을 구경해도, 가이드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누가 설명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시인이 안내해 주면 어떨까.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52)의 발길을 따라가 보자. 그가 영화나라 안내자로 나섰다. 최근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이룸)란 영화 에세이집을 냈다.
"나는 단 두가지 희망을 꿈꾸었다. 담배를 돈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서 피우는 것과 책을 욕심껏 사보는 것. 거기에다 한 가지, 영화를 마음대로 보며 살고 싶었다"는 김씨의 영화사랑 고백기다.
그의 영화 편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영화 끄트머리라도 보기 위해, 검표원에게 잘 보이려고, 극장 앞을 어슬렁거리기 일쑤였다. 중학교 때는 `병'이 더 깊어졌다. 자취하면서 일주일에 한 끼를 굶고, 그렇게 모은 쌀을 팔아 영화를 봤을 정도였다.
그는 "지금도 새 영화가 개봉되는 토요일이면, 새 여자 만나러 가는 바람둥이처럼 마음이 들뜬다"고 말한다.
이 책은 김씨가 순수 관객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예사롭지 않다. 이광모감독은 "우리는 그의 구수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그 영화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된다"고 평가한다.
그는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기억에 남으면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뜻 `다이하드' 시리즈를 첫손에 꼽는다. `나라야마 부시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희생' 같은 외국명화도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한국영화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다.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박하사탕', `아름다운 시절' 등을 특히 좋아한다.
특히 `아름다운 시절'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던 방앗간이 사라진 것을 두고, "아름다운 것들은 힘이 없어 일찍 상처받고, 이 세상에서 일찍 사라진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억은 바람 부는 섬진강만큼이나 쓸쓸하다"고 아쉬워하는 대목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