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씨] '삶의 희비 시어로 풀었어요'
기사입력 2000년 02월 06일 15시 04분
`내 뼈가 살을 향해 내 살이 뼈를 향해 이토록 부대끼는 시끄러운 싸움은 언제쯤 끝나려나'.
젊은 여성시인 김선우씨가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 비평사)을 냈다.
시인은 희비가 교차하는 삶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나를 가두는 것에 대한 반항"이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꽃과 여성, 살과 뼈가 동시에 존재한다. 순하디 순한 작품도 있고, 그로테스크한 시도 있다.
자칫 산만하지 않을까. 시인은 "삶 자체가 그렇다"고 짧게 대답한다. 그렇다 해도, 폭이 넓으면 얇아질 우려가 있다.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상처를 안고 있다. `연중 아홉달 사리돈을 씹는'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다. `상처에 꽃잎을 달아줄 수 있었다'고 말하기를 꿈꾼다.
시인은 상처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고 내려간다. `창밖엔 능소화, 炎天(염천)을 능멸하며 핀다는 그 꽃이 제 꽃대궁 속에 두레박을 내려 길을 묻'는 건 곧 시인의 모습이다.
`아줌마들이 뭉청뭉청 돼지 한 마리 썰고' 있는 소금구이집처럼, 육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도 독특하다.
무엇보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성이 시집을 관통한다. 그 여성성이 상처를 감싼다. 특히 시 `어라연'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어라연 계속 깊은 곳에/어머니 몸 씻는 소리 들리네//자꾸 몸에 물이 들어야/숭스럽게시리 스무살모냥…//어라연 푸른 물에 점점홍점점홍/그냥 두세요 어머니, 아름다워요'
어머니는 슬픔을 고백하고, 딸은 그 슬픔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정경이다. 깊은 계곡에서 모녀가 은밀하게 몸을 씻는 모습이 아름답다. `내력'이나 `양변기 위에서' 같은 시도 긴 여운을 남긴다.
김씨는 여성성, 꽃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버거움,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서적인 시어로 현실을 다채롭게 형상화하는 것도 새롭게 다가온다.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
[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