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레디고 '라이벌의 시너지 효과'
기사입력 2000년 01월 24일 13시 18분
펩시콜라가 없다면 코카콜라가 광고를 해댈까?
한석규가 없다면 박중훈이 무슨 재미로 연기할까?
조성모가 없다면 유승준이 그토록 격렬하게 춤을 출까?
농구와 야구경기에서도 삼성과 현대가 만나면 유독 열기가 달아오르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는 라이벌이란 게 있다. 세상 어디에도 독과점이란 없다.
어쩌다 잔치집에 가면 먹을 수 있던 식혜가 언제인가부터 캔음료로 만들어져 빅히트를 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마켓의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상표를 달리한 식혜 캔이 즐비하다.
IMF위기가 온 나라를 얼어붙게 한 시절, 미국 LPGA에서 활약하는 골프선수 박세리가 `한그루 상록수'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런데 조금 있어 그녀의 연속되는 우승 소식이 약간은 무감각하게 느껴질 즈음, 김미현의 등장이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야구계에선 해태가 한국시리즈를 연속 제패하며 독주체제를 걸으며 포효했는데, LG가 우승을 따내며 새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렇다. 라이벌이 없다면 발전은 커녕 살아가는 재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너무 잘 나갈 때 박수를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그를 한방에 보낼 대안을 찾곤 한다.
요즘 나는 수많은 영화관계자들로부터 우려섞인 원성 내지는 충고를 듣고 있다. `한국영화를 독점한다' 내지 `매점매석이다' 등등.
듣기에 따라선, `내가 그렇게 잘 나갔나'란 자위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론 서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찌하다보니 나는 지금 남들보다 한국영화를 많이 제작하고 있고, 배급쪽에서 꽤 힘을 쓴다고 비쳐지고 있다. 내딴엔 열심히 해볼라고 한 일인데, 왜 그게 그처럼 모양이 안좋게 비쳐진 것인 지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독점으로 보이는 이 상태가 길어지거나 영원하다면 모든 우려와 비난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으나 세상 일이란 게 어찌 그런가.
안성기란 배우의 전성시절. 한국영화계엔 안성기 이외엔 남자배우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엔 안성기가 출연하는 영화만 관객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박중훈과 최민수가 나타났고, 다음엔 한석규가 나타나더니, 또다른 젊은 배우들이 흥행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오빠부대의 우상이었던 가요계의 거인 조용필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현란한 춤을 추는 댄스가수들과 귀여운 외모를 지닌 미성의 발라드 가수들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고 있다.
공포의 광속구를 뿌리던 선동렬은 이젠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슛도사 이충희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간혹 나를 `권력자' 내지 `미다스의 손'으로 묘사하는 데 대해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앞의 예에서 보았듯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다가 `플러스 알파'를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이나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빠른 시일내에 대중들로부터 나의 존재를 잊게 할 것이고, 한국영화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지 않겠는가.
만약 라이벌이 없는 세상, 독점이 가능한 세상을 가정해본다면 열등감, 자괴감, 무력감이 횡행하며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영화계에서 `강우석이 한국영화를 독점한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대안세력이 빨리 생겨날 것이란 징후가 아니겠는가.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진대, 어떻게 이처럼 당연한 세상사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P.S] 나는 궁금해진다. 나의 뒤를 이을 선수는 누구일까? 평소 나와 친한 영화세상의 안동규 사장이나 한맥영화의 김형준 사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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